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너는 내 몸을 혐오했지만 손은 떼지 못했지

모욕과 집착이 뒤엉킨 관계—그가 왜 욕하면서도 붙잡는지, 당신은 왜 맴도는지를 파헤친다. 혐오의 말 뒤에 숨겨진 역설적 속박, 그리고 그 속박을 품에 안고 싶어 하는 우리의 심리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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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몸을 혐오했지만 손은 떼지 못했지

“너 진짜 최악이야. 진짜 질길이 끔찍하다.”

차 안의 공기가 고동쳤다. 김서준은 운전대를 꼭 쥐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손은 나의 허벅지 위에 남아 있었다.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떨리는 건 화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일까.


더러운 말 뒤에 숨은 손길

우리는 누군가에게 **‘쓰레기’**라는 낙인을 찍는 순간 그 낙인을 붙잡게 된다. 혐오의 말은 자기 방어이자 자기 고백. ‘네가 더럽다’는 말은 실은 ‘나도 그 안에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서준은 말할수록 나의 팔둑을 더 살폈고, 나는 그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다. 모욕은 때로 가장 강력한 속박이다. 누군가를 지옥으로 떨어뜨린다는 말은, 결국 지옥에 끌고 가겠다는 선언이니까.


진주의 빗속 발가락

진주는 스튜디오 디자이너다. 그녀는 남자친구 ‘도현’에게서 매일 같은 말을 들었다. “너랑 하면 냄새나.”, “몸매가 좀 그래.”, “다른 사람은 다 하던데 넌 왜 안 돼?”

그런데도 그녀는 아침마다 그의 집 현관문 앞에서 5시간을 기다렸다. 비 오는 날도, 찬바람 부는 새벽도. 한번은 도현이 퇴근길에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나오는 걸 봤다. 진주는 뒤편으로 숨어서 우산 속에서 울었다. 그래도 다음 날 똑같이 왔다.

"나는 그 말들이 싫은 게 아니라, 그 말들이 사라지면 너도 사라질까 봐." 진주가 속삭였을 때, 우산 아래 발가락이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아들과의 무릎 위에서

나는 37세의 유리를 만났다. 그녀는 남편에게 ‘아들이나 만큼밖에 안 되는 질’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와 잠자리를 같이했다. 남편은 술 취해 몸을 던졌고, 유리는 침대 끝에 무릎을 세운 채 그것을 받았다.

"왜 안 떠나?"

고개를 들자, 유리는 피식 웃었다. 눈매가 꺾이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떠나면, 나를 혐오하는 마지막 사람마저 사라질 테니까. 나는 그만큼 내가 싫어."

그날 밤 유리는 남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고, 남편은 그녀의 눈을 가렸다. 서로가 서로의 어둠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왜 우리는 저주를 품에 안고 싶은가

심리학자 래치는 ‘역설적 속박’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모욕받은 사람은 모욕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겨둔 죄책감을 확인한다. ‘아, 역시 나는…’이라는 확신. 그 확신이 두려우면서도 은밀히 안도를 준다. 난 이미 버려진 몸이라고. 그래서 떠날 권리마저 포기한다.

또한, 모욕은 권력의 일종이다. 누군가를 ‘최악’이라 부르는 순간, 그는 ‘가장 높은 기준’을 자처한다. 그래서 모욕을 퍼붓는 사람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혐오의 손아귀 안에 들어온 상대를. 두 사람은 서로를 부양하는 관음이 된다.


내일 아침, 너는 어디에 있을까

당신도 한 번쯤 들었을 말이다. 형편없다, 질렸다, 창피하다. 그리고 그 말에 매달렸다. 떠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말이 뇌리를 간지럽힌다. 그렇다면 묻는다.

그 말을 믿지 않는 그날 아침, 너는 혼자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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