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례식장의 조화가 앙상한 가지처럼 늘어져 있던 날, 송미정은 검은 벨벳 장갑을 끼고 정원을 돌았다.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 복도 끝, 남편이 즐겨 쓰던 샴페인색 넥타이를 매고 선 여자가 울고 있었다.
너도… 아픈가 봐.
말은 본능적으로 새어 나왔다. 미정은 그 순간조차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그러나 입에서 나온 건 감시의 말이 아니었다. 단지 허공에 떠도는 어휘 하나가 목끝을 스쳤다. 여자—정부—는 눈꺼풀이 부어 터질 지경이었다. 콧물이 입술에 닿을 때쯤, 미정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 한 모서리가 정부의 턱에 닿는 순간, 미정은 느꼈다. 자신의 몸속에서 차올라오는 건 분노도, 분노의 잔재도 아니었다. 초라한 동질감—남편이 똑같이 우리를 버렸다는—이 손가락끝에 진물처럼 번졌다. 그것은 가장 더러운 종류의 연대였다. 미정은 그걸 발견했다. 30년 동안 남편의 출장 보고서를 한 장도 빠짐없이 읽으며 쌓아 올린 단서들—향수 냄새, 숙소용 비누, 레스토랑 영수증—이 사실은 배우를 위한 대본이었다는 걸.
그녀는 안방 침대 시트를 2주에 한 번씩 바꾸며 위안 삼았다. 깨끗한 천 위에 누워 ‘나는 아직 버려지지 않았다’를 되풀이했으니까.
정부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정은 깨달았다. 자신이 원한 건 단순한 증거가 아니었다. 그 증거가 만들어내는 연극이었다. 이제 막 막을 내린 30년의 연극 말미에서, 그녀는 마침내 주연으로 서고 싶었던 것이다.
2019년, 서울 방배동. 세실리아는 남편의 두 번째 장례식장에 숨어 들어갔다. 첫 번째는 공식, 두 번째는 비공식이었다. 민우의 정부 은채가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던 곳. 여기 왜… 하고 묻는 대신 세실리아는 은채의 손목을 잡았다. 그곳에 민우가 3주년 기념으로 선물한 시계가 차 있었다. 자신도 같은 걸 받았다는 걸 알면서도.
화장실 거울 앞에서 세실리아는 은채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너는 눈물이 예쁘니까, 그래서 그가 더 사랑했을 거야.
은채는 그 말에 얼어 붙었다. 세실리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 이유로 나는 30년을 버텼지.’
2021년, 부산 해운대. 수정은 남편의 빈소에서 정부 혜진이 쓰러지자 팔꿈치를 걸쳐 줬다. 혜진의 속눈썹이 떨리는 게 보였다.
아저씨가 갑자기… 빨리 가버려서…
혜진의 울음소리가 수정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수정은 혜진을 제일 먼저 떠나보내고, 집에 돌아와 남편의 일기장을 꺼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혜진이 오늘도 울었다. 그 눈물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아서. 수정은 절대 울지 않아서, 나는 종이 위에만 산다.
수정은 그 문장을 읽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는 절대 울지 않았지. 대신 오늘, 그 눈물을 닦아줬다.
정부의 눈물 앞에서 유부녀들은 미묘한 권력의 반전을 경험한다. 지금까지 몰래 쳐왔던 경쟁의 끝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리품이 되는 순간. 상대를 달래며 스스로를 고발하고, 연민을 표현하며 지독한 복수의 맛을 음미한다.
우리는 왜 정부를 위로할까. 그건 단순한 관용이 아니라, 마침내 무대 위에 선 배우가 되기 위해서다. 상대의 슬픔 하나만큼은 내가 연출한다는 사실이, 지독한 환희다.
심리학자 클라인은 ‘분노의 대체물’로서 연민을 설명한다. 상대를 숭배의 대상으로 승격시켜 놓고, 거기에 자신의 희생을 투사하며 통제력을 되찾는다. 그 희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이 얼마나 음습한 환희인지.
송미정은 아직도 정부의 눈물이 잠긴 손수건을 서랍 깊숙이 간직한다. 누군가가 묻는다.
당신은 그녀를 용서했나요?
그러면 미정은 느릿느릿 고개를 저는 것이다.
용서는커녕, 그날 나는 그녀의 눈물 한 방울씩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지금도 그 수건을 꺼내보며 미소 짓는가? 미정은 답한다.
그 눈물의 무게만큼 나는 자유로워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