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네가 처음 만지는 게 아니잖아"
조명이 꺼진 침대 위, 유리가 옆자리에 앉아 내 손을 뿌리치며 속삭였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퍼진 향수 냄새는 낯선 남자의 방에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려다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멈추게 했다.
욕망의 해부
결혼 전, 유리는 단 한 번도 벗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불이 꺼진 방에서, 옷을 흐트러뜨린 채로 섹스했다. 그녀의 몸은 빛 속에서는 너무 민감해서 흔들릴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나는 그게 순수함이라 믿었다. 착각이었다.
사실 그녀는 자기 몸의 흔적을 숨기고 있었다. 슬쩍슬쩍 만져볼 수 있던 가슴 옆의 희미한 흉터, 허벅지 안쪽의 작은 문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우려는 티 없이 밝은 표정. 결혼이 확실해진 순간부터 그녀는 더 조심했다. 이제는 "남편"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 몸의 역사를 지워야 했으니까.
흰색 레이스와 검은 그림자
결혼 3주년 밤, 유리는 아직도 속옷을 벗지 않았다. 흰 레이스 브라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나는 몰랐다. 그 레이스 뒤에 숨은 진짜를.
그날 밤, 나는 깨어났다. 화장실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 문살이 비친 그림자 하나가 봉제실처럼 생긴 거울 앞에 섰다. 유리가 브라를 풀었다. 그녀의 가슴 아래로 흐른 검은 그림자. 나는 눈을 비볐다. 아니, 그림자가 아니었다.
검은 잉크로 새겨진 이름. "J". 가슴 아래, 심장 바로 위에. 작고 둥근 글씨체. 그녀가 숨겨온 문신. 유리는 화장솜으로 그것을 지우려 문지르고 있었다. 피부가 붉게 뜨거워졌지만, "J"는 사라지지 않았다.
두 번째 발견
몇 달 뒤, 우리는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유리는 비키니 수영복을 사왔다. “이제는 괜찮아”,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날도 그녀는 수영복 위에 린넨 셔츠를 걸쳤다. 바닷물에 젖은 셔츠가 붙자, 나는 또 다른 것을 봤다.
허벅지 뒤쪽. 검은 숫자. "11.03".
그날 밤, 나는 유리의 가방을 뒤졌다. 파운데이션과 컨실러, 흰색 테이프, 그리고 작은 카메라 필름 한 장. 필름에는 흐릿한 사진이 찍혀 있었다. 유리가 다른 남자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진. 남자의 손가락이 유리의 문신 위에 올라가 있다. 그 손가락에도 같은 "J"가 있었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우리는 배우자의 몸이 "순수"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건 결혼이라는 제도가 요구하는 거짓이다. 사람의 몸은 추억의 기록지다. 키스의 자국, 누군가의 이름, 함께했던 시간들. 그걸 지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우길 원한다. 왜냐하면, 배우자의 과거가 느껴지면 "지금 이 순간"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니까. 유리가 숨긴 건 문신이 아니라, 내가 그녀의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문을 열고 나온 유리
어젯밤, 유리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내가 따라갔다. 거실. 그녀는 테이프를 뜯었다. 거울 앞에 서서, 자기 가슴의 "J"를 천천히 만졌다. 나는 문 뒤에 숨어 지켜봤다.
유리는 속삭였다.
“이젠 괜찮아. 너도 이제 알았잖아.”
그녀는 내게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불을 켠 상태로.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전체를 보여줬다. 가슴 위의 "J", 허벅지의 "11.03", 그리고 내가 몰랐던 작은 흉터들. 그녀는 “이건 내가 살아온 증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뭘 봤을까. 배신일까. 아니면 사람이라는 존재의 불완전함일까.
마지막 질문
너의 몸에는 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아직도 당신은 그걸 지우려 문지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