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지 마. 떨어뜨릴까 봐.”
아내 지연이 처음으로 선재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목걸이를 올려놓을 때, 나는 두 발 떨어진 곳에서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작년 가을, 삼청동 와인바. 선재는 지연이 다니던 필라테스 학원 강사였다. 그날 그는 유리잔 대신 그녀의 목걸이를 받아 든 손을 조심스럽게 접었다. 금세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준 목걸이를 다른 남자의 손에 맡긴다. 그건 단순한 실례가 아니야. 선전포고지.
그녀의 숨결이 닿은 금속
사실 나는 그날부터 알았다. 지연이 선재에게 건넨 건 목걸이가 아니었다는 걸. 18K 골드 체인에 달린 두툼한 원형 펜던트. 결혼 3주년 기념으로 내가 고른 건데, 그녀는 늘 목뒤에 닿는 쿨한 감촉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그 펜던트를 손가락으로 쓸며, 눈은 선재만 바라보고 있었다.
목걸이를 내주는 동작만큼 은밀하면서도 도발적인 신호가 있을까. 금속이 피부를 떠나는 순간, 누군가의 체온이 대체된다. 그 떨림, 그 무게. 아내의 목 둘레를 지키던 것이 한 남자의 손끝으로 옮겨가는 찰나, 나는 복종의 서사가 시작되는 걸 느꼈다.
내가 지켜야 할边(변)을 넘어 섰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실수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
두 달 후, 지연은 선재의 스튜디오에서 프라이빗 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필라테스라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검은색 후ood 집업을 입고 나갔다. 뒤태에선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목이 허전했다. 그날부터 그녀는 목걸이를 집에 두고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실수로 두고 나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그녀는 침대 위에 목걸이를 놓고 발길을 뗐다. 그리곤 새벽 두 시, 취한 듯 집에 들어와 샤워를 했다. 물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웃음 같은 건 기척일까, 착각일까. 나는 소파에 누워 그녀의 목을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선재는 SNS에 연작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검은 배경 위로 떨어진 목걸이만 클로즈업. #dailyobject #goldpendant. 해시태그는 냉정했다. 그 사진 속 목걸이는 내가 봐도 틀림없었다. 지연이 늘던 것. 선재가 찍은 사진엔 금속 표면에 지문이 찍혀 있었는데, 엄지손가락 모양이 넓어서 여자의 것처럼 보였다.
셋이서 숨쉬는 방
내가 지연이 사는 아파트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건 11월 말이었다. 퇴근 후 지연이 운동복 차림으로 돌아오는 걸 목격한 날. 그녀는 거실 거울에 서서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선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을 켜지는 않았지만, 유리창에 비친 그녀의 입술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늘도 목이 허전해.’
그녀는 그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그 다음 날, 선재가 직접 목걸이를 가져왔다. 현관 벨이 울렸을 때 나는 집 안이었다. 지연은 초인종 영상을 확인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문을 열자 선재는 손에 목걸이를 든 채 서 있었다. 지연은 고개를 들어 그에게 목을 내밀었다. 선재는 체인을 천천히 감으며, 가늘게 떨리는 지연의 숨결을 느꼈다.
그들은 30초만에 끝냈다. 실제로 포옹도 키스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우리 세 사람이 같은 침실에 누워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네 개의 허파가 같은 공기를 빨아들이고, 고개를 돌리는 각도마저 맞춰진 느낌.
금기의 끈
사람은 왜 자신의 소유를 남에게 맡기는 순간 더 뜨거워질까. 지연이 처음 선재에게 목걸이를 맡길 때, 그녀의 눈빛은 착각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었다. 소속이라는 단어가 물리적으로 풀리는 순간, 그녀는 또 다른 소속감을 얻는다.
심리학자들은 소속 욕구가 두려움과 동일한 신경 경로를 지닌다고 말한다. 목걸이라는 끈이 풀리면, 목덜미의 맥박이 더 선명해진다. 그 맥박을 누가 느끼느냐가 문제다. 남편이 사준 목걸이를 남편이 아닌 누군가가 다시 채워준다는 건, 믿음이 아니라 항복이다.
나는 이제 지연이 집에 돌아올 때면, 그녀의 목에 새로운 금속이 반짝이는지 확인한다. 선재가 준 건지, 아니면 그녀가 자급자족한 건지. 하지만 둘 중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녀가 내 목걸이를 버렸다는 사실뿐.
당신의 목에 무엇이 남았나
어젯밤, 나는 지연에게 물었다. “그 목걸이, 어디 갔어?” 그녀는 유리잔을 아래로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어딘가에 두고 왔어.” 그 말 한마디로 우리의 침실은 끝없는 공백으로 변했다. 그녀는 이제 목둘레에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 빈 허공만이 그녀의 살결을 지킨다.
당신은? 당신의 목에 걸린 것은 아직도 당신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손끝이 더 가까운가.
그건 단순한 목걸이가 아니야.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재는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