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보낼까 말까, 손끝이 떨리는 진짜 이유

차단한 남자에게 다시 연락하려는 순간, 몸서리가 치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밤

차단권력역전집착금단자기혐오
보낼까 말까, 손끝이 떨리는 진짜 이유

오늘 밤, 네 번째 시도

화면이 꺼진 핸드폰을 오른손에 쥐었다가 왼손으로 바꿨다가 다시 오른손.

"이젠 진짜 끝이야." 심장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카톡방 위에 떠 있는 ‘상민’이라는 두 글자가 회색 불빛만으로도 내 가슴을 졸라맨다. 47일 전에 차단했는데도, 지문 인식이 풀리는 순간마다 검은 배너가 뜬다.

‘차단된 상대입니다. 대화방을 나가시겠습니까?’

말이 돼? 내가 먼저 잘라놓고, 내가 또 미치는 거야?


차단 뒤의 나지막한 도취

차단은 사실 가장 화려한 굿바이였다.

그날 새벽, 상민이 보낸 ‘자기야?’라는 두 글자 앞에서 내가 느낀 건 달콤한 승리감이었다. ‘짜장’이라도 외친 듯, 손끝으로 ‘차단’ 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상대가 연락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내게만 열려 있는 비밀 통로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 ‘상민이 지금쯤 나 없이 얼마나 초췌할까’를 상상했다. 그의 절망이 내 하루를 물들이는 감정의 향수였다.

그러나.

47일째, 나는 차단 해제를 노린다. 왜? 차단의 힘은 내가 아니라 그가 증명해 줘야 살아 숨 쉰다. 혼자만의 권력은 결국 텅 빈 왕관이다.


하얀 거짓말들

첫 번째 이야기 - 은비, 29세

"밤새워 울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은비는 커피잔을 돌리며 말했다. 8개월째 만나던 영진은 은비가 새벽 3시에 보낸 문장마다 ‘읽씹’으로 일관했다. 결국 은비는 영진을 차단했다가, 사흘 만에 "차단 해제해도 돼?"라는 문자를 보냈다.

‘차단은 내가 먼저 떠나는 연애의 연출인데, 그래도 언젠가 다시 오길 바라는 마음의 속임수였나 봐요.’

영진은 30분 만에 답장을 했다. ‘왜 차단했어?’ 은비는 순간 손끝이 차가워졌다. 차단은 내가 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끊김마저도 검열이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 - 선우, 34세

선우는 전 남자친구 ‘재민’에게 매주 토요일마다 연락했다. 차단은 1년 전, 재민이 다른 여자와 결혼 발표를 한 날이었다. 하지만 토요일만 되면, 선우는 차단 해제를 눌렀다가 30초 만에 다시 차단했다.

"그게 제일 긴장돼요. 30초 동안 재민이 온라인인지 아닌지. 결혼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찰나에 저보다 더 초췌해 보이길 바라는 거예요."

선우는 고개를 떨궜다. ‘차단 해제는 30초짜리 도박이에요. 내가 승리하거나, 뼈저리게 패배하거나.’


권력의 역설

차단은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끊임없는 연결의 변주다.

우리가 차단을 할 때마다 반복하는 몸짓은, 사실 상대에게 *‘당신을 밀어낸 나를 기억하라’*는 강박의 메시지다. 차단의 순간, 우리는 상대를 동시에 두 곳에 둔다: 한쪽은 완전한 소외, 다른 한쪽은 완전한 집중. 바로 그 이 우리가 숨 쉬는 공간이다.

심리학자 제임스 그리어는 이런 행동을 ‘회귀적 권력’이라 부른다. 상대를 끊음으로써 오히려 내게 더 깊숙이 들어오게 만드는 설계. 차단 문구 하나가, 그를 ‘영원한 사형’이 아니라 ‘임시 휴직’으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

그래서 우리는 다시 눌러야 한다. 차단 해제. 권력의 피맛이 너무 달콤해서, 끊는 손끝이 떨리지 않게 하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 3시 12분. 나는 아직도 핸드폰을 쥐고 있다.

‘차단 해제하면 내가 졌는데, 차단 유지하면 내가 또 졌는 걸까?’

47일째 반복되는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차단의 힘을 시험하고 싶다. 상민이 내게 아무것도 보내지 못하는 동안, 내 마음은 오히려 그를 향해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내가 차단한 게 그인지, 아니면 나인지.

이 순간, 당신도 누군가를 차단한 뒤, 차단 해제 버튼을 어둠 속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긴 척하는 네가, 사실은 지고 싶어서 차단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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