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는 왜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데 연인까지 끌어들였을까

전 남자가 새 동거녀를 앞세워 당신을 창피시키는 이유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당신이 무릎 꿇는 광경을 목격하는 데 있다. 모욕의 무대 장치와 ‘타자화된 자기증식’ 심리를 파헤친다.

권력놀이전리품모욕의 쾌감착취적 애정관계의 폐허
그는 왜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데 연인까지 끌어들였을까

너는 아직 우리 침대 시트에 남아 있는 세탁기 안 돌린 냄새를 맡으며 울고 있었지. 그때 키보드 위로 툭, 인스타 DM 하나 떨어졌다.

아, 미안. 실수로 보냈네.
우리 집 거실에서 찍은 사진인데
너랑 똑같이 생긴 쿠션 하나 있어서 헷갈렸나 봐

사진 속엔 니가 쓰던 그 그레이 쿠션과 동일한 게 아니라, 똑같이 찢어진 솜까지 드러난 채 그녀의 엉덩이 밑에 깔려 있었다. 찍은 날짜는 너희가 헤어진 지 3주 차. 시트도 너희가 누워던 색깔, 조명도 너희가 키던 2700K. 그가 아는 건 다였다는 뜻이지.


너를 벽에 몰아넣는 맛

모욕은 말 그대로 **‘몰아세우기’**의 기술이다.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네가 할 말을 말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장치를 동원하는 것. 동거인을 끌어들인 건 우연이 아니야. 그녀는 그가 고안한 ‘무대 장치’의 일부. 너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울 겸 증인이니까.

왜 굳이 연인을 데리고 와? 왜냐면 그녀가 있는 자리에서 네가 무릎 꿇는 장면을 목격하기 위해.

그는 이미 끝난 승부에 다시 뛰어들어 너의 패배를 확대 재생산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녀는, 당연히, 그 무대의 엑스트라. 일부러 너희가 단 둘이 있던 동네 카페에 앉아서 키스까지 하더라니.


사례 1. 지하철 2호선, 종로3가역

서진이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전 남자친구 민수를 마주쳤다. 손을 잡고 선 여자는, 놀랍게도 민수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냥 회사 동기’라고 말하던 혜지였다.

민수는 플랫폼에서 서진이를 발견하자마자 혜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뻗어 서진이의 눈앞에서 턱을 쓰다듬었다. 아주 작고 느린 동작이었다. 혜지는 당황했지만, 이미 관람객이 된 서진이의 시선을 의식한 듯 민수를 끌어안았다.

오늘도 회식 끝나고 술 먹었니?
너 술 먹으면 눈물 뚝뚝 흘리잖아.

민수의 말은 서진이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녀가 술 먹으면 눈물 찔끔 흘리는 걸 귀엽다고 하던 민수였는데, 그걸 혜지 앞에서 ‘단점’처럼 말했다. 서진이는 피하려 했지만, 민수가 일부러 그녀가 타려는 칸으로 끌고 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민수가 속삭였다.

우리 집에 올래?
침대 시트 아직도 너 냄새 나는데

사례 2. 7층 복도, 우리가 함께 살던 아파트

하은은 퇴근 후 우연히 아파트 복도에서 동훈을 마주쳤다. 그는 그녀가 살던 동일한 층에, 새 동거녀와 함께 이사를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순간, 동훈은 유리 벽에 비친 하은의 얼굴을 보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 집에 초대할까?
너랑 똑같은 그릇들이 있는데.

하은은 고개를 돌렸다. 동훈은 그녀의 반응을 즐기며 새 여자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도 하은이 누군지 알고 있었는지, 복도 바닥에 떨어진 하은의 우편물을 집어 들어 동훈에게 건넸다.

여기, 전 여자친구 우편물인가 봐요?

하은이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아직도 동훈 이름이 적힌 등기우편물이었다. 그녀는 그걸 동훈의 새 여자친구에게 건네고, 복도를 걸어 나갔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선 동훈의 웃음소리만 길게 울렸다.


그가 원하는 건 승리가 아니야, 구경이야

부정한 욕망은 **‘당신이 내가 만든 덫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모습’**을 목격하는 데서 오는 환희로부터 비롯된다. 단순한 질투나 자존심이 아니라,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부정당하는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것. 동거인을 끌어들이는 건 ‘당신은 대체 가능해’를 연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심리학적으로 이를 **‘타자화된 자기증식’**이라 부른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완전히 박탈하는 데서 오는 권력감. 그리고 그 권력감은, 동시에 자신도 공허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더 강렬한 모욕이 필요해지지.

결국 그는 너의 존재를 지우려는 게 아니야. 그는 네가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너를 그 자리에 세워두는 거야.


너는 왜 그 자리에 서 있는가

그가 던지는 칼날은 사실 네가 들고 있는 거울이야. 너는 왜 아직도 그가 보낸 DM을 확인하는가. 왜 아직도 그 아파트 복도를 걷는가. 그리고 왜, 그가 네가 서 있던 자리에 똑같은 쿠션을 깔아놓는 순간에도, 너는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그리고 그 답은, 그가 원하는 그대로 네가 무릎 꿇는 광경이 아니라, 네가 그 자리에서 발을 떼고 뒤돌아서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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