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흰 블라우스 단추 두 개

단추 두 개만 잠긴 흰 블라우스가 촉발한 5번의 접근. 그들이 아닌 나를 향한 욕망의 실루엣을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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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블라우스 단추 두 개

흰 블라우스 단추 두 개

그녀는 흰 블라우스 단추를 두 개만 잠그고 있었다. 대리석 바닥에 흩어진 커피 방울이 말라가기 전에, 나는 이미 그녀의 목덜미로 시선을 올려놓았다. 손에 든 종이는 고작 구실이었다. 이건 실수야, 외치던 그녀의 숨결 끝자락이 내 손등을 스쳤다. 단 한 번의 살결 접촉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눈꺼풀 떨림 하나하나를 정밀검사하듯 스캔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그녀에게서 온 답장이 아니라, 내가 흘린 숨소리만 귀에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한 명씩 다가가기로 했다. 다섯 명. 다섯 번의 숨죽임.


잡아당기는 공기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 문신 남자의 왼팔이 노출됐다. 네모난 라인이 지하철 노선도처럼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의 검지 손가락 끝이 이어폰 줄을 톡톡 두드리는 리듬을 세었다. 이건 쉽지 않겠지. 내가 중얼거릴 때, 남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뒷모습만큼은 뚜렷했다. 실패했지만, 대신 가슴이 뜨거워졌다. 첫 번째 숨죽임이 끝났다.


수면 위에 뜬 초록빛

주혜는 여섯 살 연하였지만, 눈빛만큼은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다. 봄날 오후, 친구 집 거실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우연처럼 그녀 옆에 앉았다.

"어쩜 이렇게 비슷해요?" "뭐가요?"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눈 꼬리가 내려가는 거."

그녀는 피식 웃으며 안경을 벗었다.

"오늘은 엄마 생신이거든요. 근데 전화 안 했어요."

잠깐, 그녀는 스스로 빗장을 풀고 있었다. 나는 그 빈틈에 슬쩍 손을 넣었다. 주혜의 손등 위에 제 손을 살포시 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깜빡이더니 뒤로 물러났다. 전날 남자친구와 헤어진 상태였다. 내가 건드린 건, 그녀의 상처가 아니라 나의 욕망이었다.


강가에서의 거짓말

혜진은 퇴근 무렵 옥상에서 담배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붉은 노을 아래, 불꽃은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불은요, 있는데… 굳이 담배 안 피우시잖아요." "아, 그냥 하던 척. 사실 당신이 뭘 피우든 궁금해서요."

혜진은 낮게 웃으며 라이터를 건넸다. 끝이 조금 뜨거운 금속이 닿는 순간,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 내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저는 담배가 싫어요. 그냥 여기서 있으면 마음이 조용해서요."

혜진은 라이터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회사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담배가 싫다라고 잠깐 혼잣말했다. 맞닥뜨린 욕망이 나에게서도 손가락 두 개를 찢어내는 것처럼 아팠다.


눈먼 질주

책방에서 만난 교수는 흐릿한 안경 너머로 날 쳐다봤다. 내가 들고 있던 책 제목을 느릿느릿 읊었다.

"『침묵의 대가』요?" "네, 근데 읽다 말았어요. 끝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 저도 끝까지 못 읽었어요. 다만, 침묵이 끝나는 지점에서 관계가 시작된다는 건 확실해요."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그의 어깨를 살짝 터치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이걸 왜 고백으로 착각했을까라는 표정을 지었다.

교수는 책 한 권을 꺼내 내게 건넸다. 표지에는 흰색 띠로 감싼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건 제가 쓴 책이에요. 마지막 장은 비워뒀습니다. 그걸 채우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해요."

책을 받아 든 순간, 나는 교수의 눈에서 내가 아닌, 책의 빈 페이지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또 다른 매개일 뿐이었다.


숨겨진 끝

다섯 번째는, 사실 첫 번째였던 그녀였다. 지하철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자리에 앉아, 그녀가 지갑에서 꺼낸 사진 한 장을 보며 오열하는 것을 지켜봤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다만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녀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가슴 한쪽이 꿀렁거렸다. 다섯 명에게 다가간 것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다섯 번의 접근이었다. 그들이 아닌 나를, 나를 둘러싼 공포와 분노와 욕망을 말이다.


욕망의 실루엣

집착은 상처의 차원을 관통한다는 말, 들어봤을 것이다. 상처는 결국 나를 봐 달라는 외침이라고. 그동안 나는 책 120권을 읽으며 연애를 공식화하려 했지만, 다섯 명의 실패는 오히려 수식을 깨부숴 버렸다. 그들이 거절한 건 나의 매뉴얼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서로를 비추는 질문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건 정말 그 사람의 눈빛 때문인가. 아니면, 그 사람 안에 비친 자신의 빈자리 때문인가. 다섯 번의 접근 끝에 나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비워두고, 누군가에게 채워달라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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