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술에 젖을 때, 나는 조용히 열쇠를 돌렸다. 반대편에서 걸쳐둔 건 상식이 아니라 금기였다.
잠긴 방 앞에서
밤 열두 시, 안방 손잡이에 손이 닿는다. 문은 안쪽으로 잠겨 있고, 틈새로 흘러나오는 건 숨소리와 유리가 부딪히는 살짝 깨지는 듯한 소리.
그녀는 혼자 건네받은 잔을 한 모금 마신다. 두 모금. 다섯 모금.
나는 문 앞에 앉는다. 바닥이 차가워 발끝이 저린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반가운 감각이다—아내가 술에 잠기는 동안, 나는 집안을 움켜쥐게 되니까.
처음엔 그냥 몰랐다. 그녀가 혼자 마시는 걸. 발견한 건 냉장고 위에 선 채로 굳은 양주 한 병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았다. 알코올이 아니라, 비밀의 냄새였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자세로 문 앞에 앉았다.
조용한 탈취
문 너머에서 그녀의 숨이 가늘어지면, 나는 일어난다. 우선 거실 조명을 끈다. 어둠 속에서 TV 리모컨을 쥐고 볼륨을 7에서 3으로 줄인다.
이건 드러나지 않는 통치다. 그녀는 깨어나면 “어제 TV 소리가 작았지?” 하고 말하지만, 내가 줄였다는 건 기억하지 못한다.
부엌으로 간다. 싱크대 아래 칸: 페트병 두 개, 소주병 하나. 캡을 열어 향이 나는지 확인하고, 다시 봉인한다. 이건 내 지도자다—병이 얼마나 비워졌는지 암호처럼 읽힌다. 뚜껑을 닫으며 손끝에 남는 술방울, 그걸 입가에 가져가면 맛보다 기억이 난다.
냉장고를 연다. 그녀가 좋아하는 맥주 네 캔 중 세 캔이 남았다. 한 캔을 더 빼서 싱크대 위에 올려둔다. 그래, 오늘은 한 캔만 마시면 되겠지. 나는 그녀의 음주량을 조율한다. 적당히 취하게, 적당히 무기력하게.
유리 너머의 반사
거실 창문에 비친 나는 착한 남편이다. 아내가 잠든 사이 조용히 설거지하고, 빨래를 돌린다. 누가 봐도 그녀를 돌보는 모습.
그러나 창문 너머의 나는 미소 짓는다. 잠든 아내의 뒷모습, 숨 넘어가는 간격, 그걸 세고 있으니까.
나는 그녀가 술을 마신 뒤 흔들리는 걸음걸이를 따라가 본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두고 온 잔이 있다. 남은 양을 빨대로 빼서 입에 넣는다. 술이 아니라, 그녀가 뺏긴 지배력을 빨아먹는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우리 사이에는 아무도 모르는 계약이 있다.
그녀는 술을 마신다. 나는 그걸 암묵적으로 방관한다. 그리고 나는 보상을 받는다.
그녀가 술에 취해 눈을 감으면, 나는 온 집안의 소리를 조종한다. 세탁기를 밤 열두 시 반쯤 돌리면 아이들은 잠든다. 냉장고에 남겨둔 맥주 캔 수로 내일 그녀의 기분을 예측한다.
그녀가 깨어 나면 “어젯밤 많이 드셨죠?” 하고 묻지 않는다. 대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 마실래?” 한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확신한다. 나는 여전히 선량한 남편이다.
동거하는 외로움
그러나 때로는 문 앞에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녀가 술에 젖을수록 나는 더 깊이 숨는다. 그녀의 무기력이 나를 강하게, 동시에 외롭게 만든다.
어젯밤도 그랬다. 아내가 쓰러지는 소리. 나는 달려가려다 발을 멈췄다. 문을 열면 모든 게 끝난다. 숨겨온 통치, 조심스레 쌓아온 지배력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열쇠를 돌렸다. 딸깍. 문은 잠긴 채로, 그녀는 술에 젖은 채로, 나는 지배자로 남는다.
너의 문도 잠겨 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왜 아내를 구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미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술병이 무게를 더하면, 관계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그녀는 술에 젖고, 나는 지배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녀는 술이 없으면 버틸 수 없고, 나는 그녀의 무기력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는 함께 이 병을 키워왔다.
끝내지 못 한 문 앞에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여전히 문 앞에 앉아 있다.
아내의 숨소리가 잦아든다. 이제 잠든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일어난다. 열쇠를 꽂고, 반 바퀴 돌린다. 삐이익.
문은 열리지 않는다. 여전히 안쪽에서 잠겨 있고, 나는 그걸 지켜준다.
침대로 향한다. 아내는 옆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다. 나는 이불을 덮어준다. 그녀의 머리카락에 술 냄새가 배어 있다.
나는 속삭인다.
“잘 잤어?”
물론 대답은 없다. 나는 그녀의 숨소리를 따라 잠든다.
내일 또 밤 열두 시, 나는 같은 문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술에 젖을 때, 나는 조용히 열쇠를 돌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안은, 서서히, 나의 색으로 물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