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그녀가 베이지 립스틱을 바르는 동안 나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연한 베이지색이 그녀의 입술 위로 슬슬 퍼질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반대로 축축하게 젖어 내렸다. 그 색은 내가 사준 게 아니었다. 누군가, 아마도 그 사람이 선물했겠지. 립스틱 뚜껑을 닫는 소리가 ‘딸깍’ 하고 울렸을 때, 나는 숨을 멈췄다. 그녀는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행복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침 인사처럼.
“오늘 누구랑 점심 먹었어?”
화장실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고르는 그녀의 목 뒤를 보고 있었다. 연한 베이지색. 평소에 잘 안 쓰는 색이다. 나랑은 아닌가 봐. 질문이 목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삼켰다. 대신 입안을 가득 채운 말은 이렇게 변했다.
“베이지색이 길래 잘 어울려.”
그녀는 티슈로 살짝 각진 입꼬리를 닦으며 대답했다.
“오늘 회사 동아리 사람들이랑 점심이래.”
말은 담담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립스틱이 입술을 벗어나 턱끝까지 한 치도 남김없이 물들였다.
민서의 2호선, 저녁 7시 42분
민서는 매일 같은 칸에 탄다. 3번째 문 앞. 그곳에서 남자친구가 서 있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아니, 사실은 제일 낮았다는 게 함정이다. 왜 오늘도 안 와? 아, 회의 있었나. 그녀는 카톡방을 확인했다. ‘우리 오빠들’이라는 단체톡에 올라온 사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들과 포장마차에서 웃고 있다. 술 한 잔 기울이던 와중에도 민서는 눈치를 챘다. 아니, 사실 더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 사진을 좋아요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스크린샷만 찍어 두고 지웠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평소와 똑같이 “아침 먹었어?”라고 물었다. 민서는 “응”이라고 대답했고, 그 사이에 무언가가 조용히 부서졌다.
준혁의 잠 못 드는 밤
준혁은 전 여자친구의 인스타그램을 하루도 빠짐없이 들여다봤다. 차단했지만, 몰래 만든 부계정으로. 사진 속 그녀는 새로운 남자와 유럽 여행을 갔다. 피렌체의 일몰, 파리의 카페, 베를린의 나이트클럽. 매번 올라오는 사진마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너와는 없던 표정들.
준혁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늘로 들었다. 액정에 비친 자신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가 바로 취소했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았다. 차가운 물이 흘렀다.
왜 우리는 이 신호등을 보며 발을 떼지 못하나
질투는 사실 놓친 기회의 환영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누리는 그 행복, 그건 내가 놓친 나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든 거다. 상대를 증오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꼴이니까.
아침 6시 30분, 텅 빈 카페
나는 오늘도 그녀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여전히 그 사진이다. 햇살 좋은 카페에서 찍은 것 같은데, 누가 찍어준 건지는 모르겠다. 화장실에서 토했다. 아침에 담배 피운 탓인지, 아니면 그냥 아픈 탓인지.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그녀를 돌려놓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그녀가 그 사진을 지우는 거겠지. 아니면 나를 포함해서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 거. 그래, 사실 나는 그녀의 행복이 싫은 게 아니었다. 나를 벗어난 그녀의 행복이 싫었던 거다.
마지막 질문
당신도 누군가를 이렇게 지켜본 적 있나. 그들이 당신 없이도 충분히 빛난다는 사실을 목격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적.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누구의 프로필을 열어두고 있나. 그리고 거기서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