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침대 위에서 우정이 붉게 타오를 때

‘그냥 한 번만’이라는 말이 우리 사이에 불 붙인 뒤, 침대 시트 위로 번진 붉은 흔적은 단순한 색감이 아니었다. 8년 우정이 하룻밤 욕망으로 녹아내리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우정과 욕망금기이별감각
침대 위에서 우정이 붉게 타오를 때

— 3월, 한낮의 빨래방 — 세탁기 문이 투명해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치지 않았다. 민트향 세제 냄새와 함께 돌아가는 속도 800rpm. 그 속도만큼 거칠게 떨리는 건 서로의 무릎이었다.

준혁이 먼저 말했다.

“형, 여기서 끝내고 싶은 거야?”

‘여기서’가 어딘지는 말하지 않았다. 다홍색 양말이 창살 안에서 네잎클로버처럼 빙빙 돌았다. 나는 뜨거운 건조기 앞으로 발을 뺐다. 피부가 뜨거워지면 조금이라도 덜 떨릴 것 같았다.

우린 8년 전, 교복 주머니에 넣어두던 손수건처럼 늘 겹쳐 있었다. 그러다 대학 졸업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붉혔다. 취업 걱정으로 잠 못 드는 밤, 준혁이 건넨 맥주 캔이 너무 차가워서 손이 얼었다. 그때부터 손끝이 떨렸다. 단지 추워서가 아니었다.


빨래방 뒷문, 오후 1시 12분 햇살이 유리창을 두껍게 막아서 안과 밖이 뒤집혔다. 건물 뒷골목, 담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닭꼬치 냄새. 우리는 그 냄새를 따라 걷다가, 문득 서로의 손등을 스쳤다. 맥주 캔처럼 시원했던 그 손이 이제는 스팀 세탁기처럼 뜨거웠다.

준혁이 다시 물었다.

“한 번만… 할래?”

‘할래’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 가슴 한복판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그림자처럼 조용한 폭발. 우리는 동시에 눈을 피했다.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세탁기 회전음마저 묻혔다.


그날 오후, 준혁의 원룸. 창틀에 걸린 커튼은 바람에 휘날렸다. 피어싱 뚫어놓은 귀걸이가 한쪽만 남아 있었다. 누가 잃어버렸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침대 끝자락에 앉아,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손가락을 맞췄다. 손톱 끝이 겹쳐질 때마다, 8년의 시간이 얇게 포개졌다. 고등학교 체육대회 때 나눈 반쪽 마스크팩, 대학교 앞 만원의 행복 떡볶이, 첫 이직 면접 떨어진 날 울먹이던 목소리…

준혁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이마에 닿은 숨결이 달콤했다. 그러다 입이 스쳤다. 단맛이었다가, 짧은 쓴맛으로 뒤바뀌었다. 한 입 먹는 순간, 끝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네 시간 동안 침대 위에 남았다. 시계 초침이 지나가는 소리마저 침묵인 줄 알았다. 눈을 감으니, 처음 가져본 날의 새 교복 냄새가 났다. 문득 준혁이 속삭였다.

“우리, 여기까진가 봐.”

그 말 속에서 ‘여기’가 어딘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서로의 어깨에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은 서로의 피부에 스며들어, 다시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이튿날 아침, 6시 41분 준혁은 먼저 일어났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새벽 공기가 들어왔다. 눈부신 햇살 속에서, 그의 눈가가 붉었다. 나는 이불을 끌어올렸다. 체온이 식기 전에 마지막으로 느끼고 싶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빨래방에 간다. 새벽 2시, 텅 빈 세탁기 속에 네잎클로버 같은 양말이 돌아간다. 800rpm 속도, 그리고 민트향 세제. 그 모든 것이 준혁의 숨결이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물었다.

“혼자 오시네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세탁기 투명문에 비친 내 입술이 흔들리는 걸 봤다. 아물지 않는 상처, 아니, 아직 끝내지 못한 입맞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네가 침대에 누워 ‘친구’와 키스했다면, 그걸 어떤 말로 부르겠는가.

사랑인가, 우정인가, 아니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나.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