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이 잠든 새벽 두 시, 현관문 열쇠가 살금살금 돌아간다. 거실 콘크리트 바닥에 맺힌 발냄새, 뒤범벅된 술과 담배, 그리고 낯선 여자의 향수 뒷맛이 뒤섞여 있다. 거울 속 나는 넥타이를 천천히 풀며 입을 연다.
“당신이 옆에 있는 와중에도, 내 몸 끝에서 그녀의 숨이 맴돌아.”
체온이 식기 전에
주현의 손길이 닿으면 두근거리는 게 아니라, 기억이 번쩍인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하지만, 지하철 문이 닫히는 0.3초 사이에 스치는 팔뚝, 엘리베이터 안에서 겹치는 숨결, 이웃 동호수의 새로 이사 온 여자의 음산한 미소—그 모든 것이 핏줄처럼 내 안을 타고 흐른다.
“내가 필요한 건 아내가 아니라, ‘새로운 피부’인 걸까?”
사랑과 욕망이 서로를 비웃는 순간을 매일 목격한다. 아내는 나를 믿는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는 그 눈빛이 닿기 전에 다른 여자의 허리 곡선을 떠올린다. 기억은 배신한다. 결혼식 날, 주현에게 끼워준 반지가 지금도 남아 있지만, 손가락 관절은 그 온기를 망각했다.
서로를 속이는 지하실
사례 1. 민석, 38세
민석은 고기를 좋아한다. 퇴근길, 대리운전 기사를 피해 술집 골목을 빠져나오면, 항상 같은 스시집이 눈에 띈다. ‘유키’라는 이름의 손님 전용 숍. 민석은 아내 수진 몰래 6개월째 들른다.
“또 오셨네요.”
유키는 흰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민석의 앞에 앉는다. 그녀는 생선을 썰 때마다 팔둑에 새겨진 비문 같은 흉터를 드러낸다. 민석은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수진이 팔에 새긴 셀룰라이트를 떠올린다. 아내의 몸은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민석은 유키의 손끝이 귀에 닿는 순간, 고개를 숙인다.
“오늘은 괜찮으세요?”
민석은 대답 대신, 유키에게 귓속말을 한다.
“당신이 나한테 손끝으로 적신 와사비, 그게 아내의 수프보다 맵다.”
유키는 웃는다. 그 미소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민석은 그녀도 다른 남자를 속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멈출 수 없다. 신랑과 신부 사이에 끼어 있는 두 명의 간교한 하인, 그게 민석과 유키다.
사례 2. 재현, 31세
재현은 결혼 3년 차, 아내 지아는 임신 7개월이다. 산부인과에서 ‘임금님 대접’이라는 말을 들어온 재현은, 출장 중 머무른 부산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애나’를 만났다. 애나는 신발 디자이너였고, 발뒤꿈치 근처의 문신을 숨기지 않았다.
“당신 아내는 몇 개월이래요?”
“7개월.”
애나는 재현의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아기가 자라면서 숨이 차죠. 그런데 그게 당신에게도 느껴질까?”
재현은 임신한 아내의 배 위에 손을 얹는 것이 아니라, 애나의 발등을 어루만진다. 지아는 태아의 심장박동을 기다린다. 나는 발바닥의 맥박을 더듬는다. 같은 하룻밤, 같은 호텔 침대, 다른 두 개의 심장이 뛴다.
욕망의 시신경
인간은 금기를 보면, 한눈에 **‘아, 이건 하면 안 돼’**라고 말한다. 그러나 뇌의 다른 부위는 동시에 ‘그래서 더 하고 싶어’라고 속삭인다. 도파민은 항상 새로움을 좇는다. 결혼은 반복이다. 반복은 예측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것은 보상 회로를 닫아버린다.
“사랑은 결국 오래 머무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자주 떠나는가를 계산하게 만든다.”
우리는 아내를 믿고, 동시에 그믐달처럼 그녀를 훔쳐보는 감정을 품는다. 배웅의 키스와 책임의 키스는 비슷한 각도로 맞물리지만, 속도가 다르다. 그 미세한 간극이 욕망의 틈새다. 타인의 피부를 떠올리는 순간, 아내는 먼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유령’이 된다. 너무 가까워서, 결국 손끝이 닿지 않는다.
떠오르는 질문
새벽 세 시, 나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녀는 잠든 눈꺼풀 아래에서 꿈을 꾼다. 나는 그녀의 꿈 속엔 내가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내 꿈 속엔 늘 다른 여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더 크다.
내일 아침, 주현이 다시 “사랑해”라고 말하면, 나는 그 말 속에 무엇을 숨길까? 아니, 숨기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그대여,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누군가의 피부를 미처 떨쳐내지 못한 채 나를 품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