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청첩장이 떨어진 그날 밤, 우리는 서로를 죽이고 싶었다

예식 한 달 전 파혼한 커플의 처참한 끝. 청첩장 위로 흐르는 피처럼, 사랑이 썩어가는 냄새를 감각적으로 포착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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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랑 결혼하면 나도 내 인생 망치는 거야."

민서의 목소리가 새벽 3시의 거실에 쪼그라들었다. 벽시계가 45일 후로 예약된 결혼식을 똑똑똑 세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놓인 청첩장 뭉치는 아직 돌연사하지 않은 듯했으나, 이미 죽어가던 냄새가 났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를 죽이지 않기로 약속했다. 키칼 대신 말로, 죽은 듯 살아남겠다고.


피 묻은 청첩장 위에서 춤을

결혼은 언제부터 지옥이 되었을까.

아니, 처음부터였지.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긁어내는 손톱이 되기로 선택했다. 민서의 전남펜스, 나의 결벽증, 서로의 부모가 남긴 멍든 자국까지. 모든 걸 퍼즐처럼 맞추며 "우리는 특별하니까"라고 속였다.

청첩장 디자인 정할 때도 그랬다. "살짝 붉은 톤이면 어때?" 민서가 물었을 때 나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예감이라도 한 듯.


그녀가 남긴 마지막 쿠션

지난 4월,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진우는 아직도 미닫이문에 붙어 있는 청첩장을 떼어내지 못했다. "진우♥나영, 5월 27일"이라는 글씨 아래로 지워진 펜 자국이 굳은 핏띠처럼 남았다.

진우 씨, 쿠션 하나만 주세요.
...이제 주지 않아도 돼요?
그래, 당신이 갖고 있던 거 전부.

나영은 퇴근길에 진우의 차에 올라탔다. 블랙박스에는 두 사람이 키스하는 37초짜리 영상이 찍혔다. 나영은 그걸 진우의 예비신부에게 보냈다. 청첩장이 떨어진 지 3일 만의 일이었다.

진우는 나중에 술집에서 말했다. "그때 나는 사실... 나영이랑 끝내려고 했거든. 근데 청첩장 보니까 미쳐버릴 것 같더라. 내가 도망치는 거잖아."


더러운 행복의 가능성

왜 우리는 끝내고 싶은 관계에 매달릴까.

결혼식이라는 절대선은 도덕적 허점을 만들어준다. "이제 와서 그만둘 수 없어"라는 주문. 실은 끝내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아니라 욕망이다.

미래의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더럽혀주길 원했다. 결혼식장에서 모든 게 깨지길. 친구들이 눈치를 떨길. 부모님이 실망하길. 그래야 내가 완전히 썩어버릴 수 있으니까.


너는 아직도 그날의 피를 닦고 있니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청첩장을 버리고 있다. "죄송합니다, 예식이 취소되었습니다"라는 카톡을 보내며.

그리고 누군가는 그 청첩장 위에 새로운 피를 떨어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언제, 누구의 청첩장을 찢고 싶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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