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의 체취가 아직 내 몸에 배어 있었다. 뜨거웠던 자리가 차가운 건 20분 만이었다. 그러나 숨결이 남아 있는 한, 그는 이 방 안에 계속 누워 있는 셈이다. 나는 치마를 한쪽 무릎 위로 끌어올리고 가장 눅진한 부위를 빠르게 닦았다. 향수 대신 땀과 정액이 섞인 냄새가 손등에 찍혔다. 그 냄새를 지하철 안에서 계속 맡아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창피하게 만든다.
07:13. 문이 닫히기 전에 플랫폼으로 뛰어들어갔다. 두꺼운 스웨터가 치맛자락을 눌러 살이 눌리는 게 느껴진다. 그가 한 시간 전 내 가슴을 주물던 손길이, 지금은 손잡이를 움켜쥔다. 2호선 안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하지만, 나는 아랫배가 축축하게 녹아내린다.
0.3초의 실루엣
맞은편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허리가 갸름하게 패인 블라우스, 치마 아래로 드러난 종아리—이 모든 게 누군가의 손길로 말미암아 조금씩 흐트러졌다는 사실이 역력하다. 서 있던 남자가 슬쩍 눈길을 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난 이미 불륜의 온도를 몸에 품고 있는데, 부끄러워할 이유가 있을까.
월급봉투 두 개, 그리고 서로 다른 냄새
회사 사무실에 도착하면 항상 똑같은 시간이다. 08:47. 출근 시간 13분을 남기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매니저라는 직함은 내가 지난밤 누군가의 몸 위에서 굴욕적인 자세를 취했던 사실을 감춰준다. 매달 25일, 나는 봉투 두 개를 받는다. 하나는 회사에서, 다른 하나는 집에서. 봉투 두 개 모두 똑같은 색을 띠지만, 냄새는 다르다. 회사 봉투는 복사기 토너와 스트레스의 냄새가 배어 있다. 집 봉투—그러니까 남편이 프리랜서로 받아 오는 돈—은 낮은 천장과 느린 환풍기 냄새가 낀다. 그 냄새들이 나를 질식시킨다.
남편은 아침마다 똑같은 말을 한다. “오늘도 힘내.”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 말을 되풀이한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힘내’라는 말은 내가 매일 밤 어느 남자의 아래에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위로다.
혜진의 속삭임, 그리고 침묵
지하철 2호선, 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혜진은 화려한 블라우스에 슈트 재킷을 걸쳤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 팀에 올해 신입 왔는데, 너무 예뻐서 난리 났어. 그런데 눈빛이… 너랑 비슷해. 뭔가를 억누르고 있는 눈빛.”
나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잠시 눈길을 낮추더니, 살짝 속삭였다.
“그래, 가끔은 다른 몸을 떠올리지 않니? 그리고 그 몸이 너의 침대 대신 너를 업어주는 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선로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불빛이, 누군가의 침실처럼 보였다. 그 불빛 속에서 나는 아직 벗지 못한 브래지어를 떠올렸다. 그는 내가 아직도 남편 몰래 속옷을 새로 사는 걸 알까.
결혼기념일, 그리고 붉은색 흔적
지난달 결혼기념일. 회사에서 조기 퇴근해서 집에 갔다. 현관문 앞에서 5분을 서 있었다. 들어가면, 미안함과 죄책감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안에서 들려온 건 여자 목소리였다.
“오빠, 여기 붓 좀 더 눌러줘. 여기요.”
순간 손에 든 케이크가 바닥에 떨어졌다. 문틈으로 보이는 건 남편의 뒷모습과,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 한 명이었다. 그녀는 붓을 잡고 있었다. 남편은 그녀의 손등을 감싸며 스케치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 장면이 누가 봐도 연인의 포스였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다시 회사로 갔다. 밤새 모니터 앞에 앉아 스프레드시트를 복사해 넣었다. 아침 7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야근이야. 냉장고에 도시락 있어.”
계산의 서리, 그리고 사랑의 온도
오늘도 문을 나서며 남편은 말했다. “오늘은 좀 늦게 들어와도 돼. 나 혼자 저녁 먹을게.” 그 한마디에 새삼 든 생각.
‘혼자’라는 단어가 왜 이리도 아프게 들릴까.
나는 회사라는 감옥으로, 그는 집이라는 유예로.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하루를 살다가, 잠깐 겹쳐지는 8시간만 부부라고 속인다. 그러니까, 당신도 한 번 물어본다.
집에서 쉬는 사람의 침대 옆, 문을 나서는 사람의 구두 끈 사이에 끼어있는 그 냉기—과연 그건 사랑의 온도인가, 아니면 계산의 서리인가.
나는 아직 답을 모른다. 단지 지하철이 터널로 들어갈 때마다, 내 몸에 배어 있는 그의 체취가 차가운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는 사실만 안다. 그리고 아침 7시 13분, 나는 다시 플랫폼 위로 뛰어오른다. 그의 침대는 아직 따뜻하지만, 나의 속옷 사이로 스며드는 냉기는 점점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