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앞에서 그가 말했다
“시간은 있는데, 나랑은 없을 것 같아.”
냉장고 문을 열고 있던 순간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툭—하고 얼굴을 스쳤다. 손에 들린 맥주 캔이 떨렸다. 아니, 내 손이 떨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는 여전히 배달 떡볶이 봉투를 뜯고 있었다. 붉은 고춧가루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는데도 숨이 막혔다. 방금 전까지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누워 넷플릭스를 봤다. 그의 팔이 내 어깨 위에 살금살금 올라와 있었고, 우리의 발끝이 미묘하게 부딪혔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말이 나오다니.
시간이라는 가장殘忍한 거짓말
우리는 무슨 관계였을까?
3개월째 매주 금요일 밤마다 만났다. 술집, 치킨집, 서로의 집. 키스는 했지만 침대 위에선 발을 떼지 않았다. 마치 누가 정해놓은 쉬운 규칙처럼.
그는 늘 바빴다.
“회사가 좀…”
“친구들이랑 약속이…”
“이번 주는 진짜 미치겠어…”
그래도 나는 이해했다. 어른이니까.
하지만 금요일 밤만큼은 나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말이라니.
시간은 있는데 나랑은 없다?
이건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 눈속임의 달콤한 독이었다. 그는 나에게 시간을 줬다. 단지 그 시간에 내가 없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티켓은 발급했지만 내 이름은 뺀 것이다.
나는 왜 이 말에 미쳐버릴까
심리학자들은 이걸 거부 편향이라 부른다. 뇌는 ‘있는데 없다’를 ‘곧 생긴다’로 착각한다. 곱씹을수록 끝이 없는 말장난.
“시간은 있는데...” → 가능성이 아직 살아 있다.
“나랑은 없을 것 같아...” → 나만 아니면 된다.
상대는 책임을 떠넘긴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야.” 즉, 시간은 있는데도 너를 채우지 못한다는 뜻이다. 너는 그의 시간을 소비할 가치가 없다. 잔인하리만치 솔직한 계산.
우리는 이 말에 홀린다. 도박 중독자처럼. 다음 번엔 돈을 따겠지. 다음 번엔 시간을 주겠지. 그리고 금요일마다 한 장씩 티켓을 긁어본다.
3개월 후, 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나는 결국 말했다.
“시간이 없는 거라면 이해할게.”
그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시간은 있어.”
“그럼?”
“그 시간에 네가 없으면 될 것 같아.”
그날 밤 나는 그와의 모든 메시지를 지웠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는 지워지지 않았다.
시간은 있는데 나랑은 없겠지.
이제 나는 금요일 밤마다 그 말을 들으며 잠든다. 문득, 누군가 또 다른 냉장고 앞에서 이 말을 듣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