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3년 묵은 콘돔 한 장, 뜯는 순간 허벅지가 떨렸다

침대 옆 서랍 깊숙이 잠들어 있던 마지막 콘돔. 뜯는 순간 덜컥 떨린 건 당신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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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묵은 콘돔 한 장, 뜯는 순간 허벅지가 떨렸다

"이건 아직 못 버릴 것 같아"

서랍을 열자 비닐 봉지 하나가 반짝였다. 끈적이지도 않고, 먼지도 없었다. 2021년 7월 제조. 유통기한은 내년까지. 세븐틴 밀리미터, 엑스트라 클로즈. 남편 민석이 사놓고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그것.

손끝으로 슬슬 쓸어보니 비닐이 살살 부르르 떨렸다. 마치 ‘나 아직 살아 있어’ 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꿈틀대는 실리콘의 온도

그날 밤 민석은 샤워를 길게 했다. 물소리가 그치고 침대 끝에 앉는 발소리. 그가 말했다.

“오늘… 뭐, 한 번 해볼까?”

당신은 대답 대신 민석의 허벅지를 쳐다봤다. 물기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다리에 붉은 실이 하나 흘렀다. 킁킁, 숨소리가 뙤다. 그러다 문득.

‘혹시 나도 저 실리콘 안에 갇혀버릴까?’

그 생각이 온몸을 타고 흘러 내렸다.


흰색 봉투 속에 남아 있던 민낯

민석의 사촌동생 수아 얘기다. 수아는 작년 말에 이혼했다. 결혼 5년 만. 이유는 단순했다.

“빈 콘돔 박스가 하나도 없어요.”

수아의 남편은 집 안 곳곳에 박스를 숨겨놓았다. 침대 옆, 운전석 글러브 박스, 서재 책 사이. 그런데 끝내 열지 않았다. 박스마다 봉인 테이프가 그대로. 수아는 봉투를 뜯어 확인했다.

“36박스에 216개. 하나도 안 썼어.”

수아는 그걸 증거로 냈다. ‘당신은 나를 원한 적이 없다’ 는. 재판정에선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웃는 사람들의 눈가는 초점 없이 흔들렸다.


누군가의 분리불안, 누군가의 감전불안

38세 은행원 혜진은 아직도 지갑에 콘돔 하나를 넣고 다닌다. 결혼 9년차, 남편과는 3년째 침대를 따로 쓴다. 지갑 속 콘돔은 레귤러 사이즈, 스킨 컬러. 봉투는 눅눅해져 있다.

동네 마트 계산대에서 카드를 긁을 때마다 눈치를 본다. ‘혹시 봤을까’. 그러나 알바생은 봉투를 딸랑 흔들어 넣는다. 봉투는 휘발유 냄새 가득한 차 안으로 돌아온다.

혜진은 가끔 지갑을 열어 확인한다.

‘남았네.’

그 말 속에는 두려움과 미련이 동시에 있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콘돔은 성(性)이 아니라 ‘끝’을 약속한다. 단단한 고무 안에 가두면 끝까지 안전, 끝까지 통제 가능. 그래서 결혼이라는 끝없는 계약 안에서도, 가장 끝에 있는 물건이 된다.

그것은 실제로 사용되지 않아야 비로소 마지막 불꽃처럼 빛난다. 한 장 씩 뜯어내면 끝이 줄어든다. 그래서 뜯지 못한다. 끝을 확인하는 순간, 관계도 끝날지 모른다 는 불안.

동시에 그 한 장은 반대로 욕망의 증거가 된다.

‘아직 나는 욕망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집어삼킨다.


허벅지에 남은 떨림은 누구의 것인가

당신은 콘돔 봉투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민석의 눈길이 닿기 전에.

침대 위에서 함께 눈을 감았다. 민석의 손끝이 당신의 발목을 스쳤다. 차가웠다. 그 순간 당신은 물었다.

"우리가 다음에 쓸 때… 누가 먼저 뜯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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