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서른, 내 첫 키스는 아직 배송 중입니다

30번의 생일이 지나도 첫 키스를 미루는 여자. 그것은 서툼이 아닌, 세상에 대한 조용한 복수였다. 지각된 욕망이 만들어낸 관계 권력의 역설.

처음지각된 욕망금기서른관계 권력

그녀가 먼저 고개를 돌렸을 때

오후 11시 47분, 홍대 뒷골목의 피시방. 모니터엔 이질적인 쌍방향 웹캠이 떠 있었다. 채팅창에선 누군가가 계속 ‘키스 경험?’이라 되물었지만 나는 그저 담배 연기만 길게 뿜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앞에 선 여자는 키 작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0.8초, 그게 전부였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사라졌고, 나는 아직도 그 0.8초를 되씹으며 잠 못 드는 밤을 보낸다.


숨겨진 시계

서른이 되자 모든 숫자가 날 조롱했다. 30개의 생일 케이크, 30번의 새벽 2시, 30번의 ‘내년엔 꼭’이라는 다짐. 친구들은 하나씩 사라져 갔다. 결혼식 초대장은 냉장고 문짝에만 무수히 꽂혔다. 나는 왜 아직도 첫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을까. 그건 단순한 서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미리 맛보지 못한 사과를 숨겨두는 마음. 남들이 벌써 다 먹어버린 게 아닌가 확인하는 순간, 그 사과는 내면 깊은 곳의 비밀 장롱으로 옮겨졌다.


민서와 유리벽

민서는 올해 들어 네 번째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였다. 32세, 스타트업 대표, 어깨 너비는 적당했다. 우리는 한낮의 편의점에서 처음 마주쳤다. 그는 과자 코너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내게 물었다.

— 미니스톱 양배추샐러드가 맛있대요? — 저도 안 먹어봤어요.

두 사람은 씹는 소리를 내는 샐러드를 테이블에 올렸다. 그가 손등을 내밀며 휴지를 건넬 때, 나는 갑자기 코를 찡긋거렸다. 그가 내 입술에 닿는 순간, 29년의 공백이 수치로 번질까 봐. 얼굴이 붉어지자, 민서는 웃으며 말했다.

— 뭐, 샐러드 때문이죠? 아니,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다슬의 야간 비행

다슬은 31세에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패션 스쿨 뒤편의 술집에서 그는 첫 키스를 찾았다. 하지만 그 키스는 다슬의 목록에선 사라졌다. 낯선 도시, 낯선 혀, 낯선 숨결. 그는 술집 뒷문을 박차고 나왔다.

— 나는 그저 상상이 더 진짜라는 걸 깨달았어. 그는 한참을 울었다.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며 첫 키스는 다시 어린 시절의 장밋빛 꿈으로 돌아갔다. 내가 아끼던 이야기를 누군가 망쳐 버렸다. 그날 이후 다슬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공항 롤러벨트 위에서 그는 다시 아무것도 물지 않았다.


왜 우리는 이것에 홀렸을까

첫 키스는 단순한 감각의 시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각된 선택권이었다. 남들이 벌써 다 해버린 것을 나는 고의로 뒤로 미룬다. 누군가의 입술이 아닌, 나의 서툼을 소유하는 방식.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관계의 권력을 역전할 수 있었다. 누가 먼저 키스할지, 누가 먼저 사랑에 빠질지, 누가 먼저 상처받을지. 나는 그 모든 첫 페이지를 아직 펼치지 않음으로써 전면에 서 있었다.

뒤처진 밤들은 사실 복수였다. 세상이 나를 보잘것없게 만들었으니, 나는 세상에게 똑같이 시간을 뒤로 돌려줬다. 너희는 이미 다 해봤지만,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나의 첫 키스를 가로챌 수 없었다.


내일도 입술은 잠길 것이다

오늘 밤, 나는 다시 편의점 앞에서 멈췄다. 민서가 사준 양배추샐러드가 냉장고 한켠에 굳어 있다. 나는 그걸 꺼내 들었다. 비닐 뚜껑을 열기 전, 전화 벨이 울렸다. 이름 없는 번호. 나는 받지 않았다.

만약 내일도 첫 키스를 미룬다면, 그건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이기고 싶은 게임의 한 수라는 걸 깨달을까.

문득, 샐러드를 먹으며 나는 웃었다. 이 늦은 시간에도, 서른 번째 생일이 넘어간 지금도, 나는 첫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가장 강하게 만든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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