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16분. 흰색 링거병이 떨리는 손에 매달려 있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었어?'
나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같은 질문만 반복해요.
답장이 안 와요.
그럼 더 보내요.
보내면 보낼수록 고요가 깊어져요.
그녀가 처음으로 눈을 감았던 날
지안은 두 시간 만에 47통을 보냈다. 첫 메시지는 사진 한 장이었다. 점심 먹은 김밥. 두 번째는 연초밥이 맛있는 집 지도 링크. 다섯 번째는 '갑자기 배아파요'. 열한 번째는 '혹시 일 끝나면 같이 약국 갈래?'. 스물두 번째는 이미 삭제된 카톡, 하지만 "상대방이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표시는 여전히 회색.
그래, 알아. 내가 지겹지. 근데 그래도 답이라도 줘. 차라리 '짜증나니까 그만해'라도.
조용한 게 가장 시끄러운 이유
카톡방 맨 위에 '지안' 이름 옆엔 숫자 47이 붙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건 '1'이 아니라 죄다 '0'이었다.
0, 0, 0, 0.
그 0이 다섯 개만 되면 지안의 머릿속에선 스위치가 내려갔다. 떨리는 손가락이 배터리 3% 남은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병원 옆 약국, 새벽 두 시. 링거병 위로 떨어지는 액체 한 방울이 단 한 문자보다 느렸다.
그녀가 눈을 감았던 이유
지안은 사실 오후 1시부터 눈을 감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 하늘을 쳐다보며 입술만 떨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하지만 속으로는 속삭였다.
'내가 죽으면 너도 이렇게 물어볼까?'
두 번째 사례: 혜진과 37℃의 실종
혜진은 체온계를 입에 물고 있었다. 오늘은 37℃였다. 뜨거운 건 이마가 아니라 카톡방이었다.
오후 2:11 혜진: 오늘 회의 끝나고 뭐해?
오후 2:15 혜진: 아 맞다 점심 뭐 먹었어?
오후 2:19 혜진: 난 짜장면 먹었는데 탕수육이랑 같이 먹는 게 좋더라
오후 2:25 혜진: 아직 안 끝났구나…
37℃가 떨어진 순간
혜진은 오후 5시 42분에 체온계를 뱉었다. 카톡방엔 아직 '읽지 않음'이었다. 그녀는 미러볼 같은 눈물을 턱끝까지 머금은 채 거울을 봤다. 눈동자에 비친 건 168시간 전에 보낸 '수진아 나 사실 너랑 헤어지기 싫어'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그 메시지를 받고도 미동도 없던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이었다.
우리가 답장에 목말라지는 이유
심리학자는 말한다. 문자 한 통에 반응하는 도파민 분비량이 마약의 절반은 된다고. 그래서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중독된다. 문제는 '반응'이 없을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이라는 이름의 불안 호르몬이 훨씬 오래 남는다는 거다.
0.5초의 기막힌 속도
지안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를 지웠다가 다시 복원했다. 한 글자씩 지웠다가 다시 썼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나를 무시하고 있겠지. 그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읽씹'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떠올렸다. 씹는 건 누구보다도 본인의 마음이었다.
헤어진 뒤에도 47통
지안은 퇴원하고 나서도 47통을 보냈다. 마지막 메시지는 이렇게 끝났다.
'나도 이제 보내는 거 그만둘게.'
그 뒤로 계속 48번째를 쓰다 말았다.
혜진과 나, 우리가 눈을 떠버린 이유
혜진은 수진의 프로필 사진을 꾹 눌렀다. 팝업 메뉴에 '차단하기'라는 단어가 있었다. 그녀는 차단했다가 3초 만에 해제했다. 그 3초 동안 혜진은 상대방을 죽여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실은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몰라.
독자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
오늘 밤,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휴대폰 알림 LED는 계속 깜빡일 것이다. 그 불빛 속에서 당신은 누군가에게 '나 죽어도 되니?'라고 묻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