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이 소주병 목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너의 숨소리를, 나는 온몸으로 듣고 있었다. 유리가 차가워지는 사이, 숨이 더 뜨거워지는 게 역설이었다. 불빛 아래서 너는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가 절대로 넘지 않겠다는 선의 표식이 되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넘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1. 떨리는 손끝의 반란
승민은 웃으며 말했다.
“한잔 더? 괜찮아?”
손은 먼저 유리병을 움켜쥐었지만, 손목이 흔들렸다. 그 떨림이 닿기도 전에 내가 먼저 병끝을 벗어났다. 고개를 돌렸을 때, 구석 테이블의 불꽃이 눈동자를 일렁였다. 불빛 속의 낯선 남자가 라이터를 튕겼다. 철컥. 불꽃 한 번 일렁이자, 나는 처음 느꼈다.
이건 아니야.
그래도 넘어야 할 것 같아.
2. 네가 그은 선
승민의 두 손은 내 어깨 위에 떠 있었다. 살을 스치지도, 눌리지도 않는 공기 중의 무게. 그 무게가 이곳까지라고 속삭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사이, 손은 이미 거두어졌다.
왜 안 잡지?
그냥 잡고 싶으면 잡으면 되잖아.
아니, 넌 왜 잡지 않는 거야.
3. 혀 끝에 낀 얼음
나는 룸펍을 나섰다. 담배 연기가 길게 남는 복도를 걸었다. 누군가가 내 허리를 감쌌을 때, 숨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손등에 닿은 온도는 뜨거웠지만, 냄새는 낯설었다.
여기서 멈추면 끝이야.
그래도 뭐가 있을 것 같아.
숨소리가 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내 귓속으로 속삭였다.
“들어갈까?”
4. 뜨거운 침대, 차가운 속삭임
그날 밤, 그의 침대는 여전히 뜨거웠다. 하지만 나의 속삭임은 차가워졌다. 눈을 감았을 때, 승민의 미소가 떠올랐다. 절대 넘지 않겠다는 선이 눈앞에 번쩍였다. 나는 눈을 떴다. 천장을 바라봤다.
나는 뭘 원했을까.
안전한 걸?
아니면 안전하지 않은 척이라도 하고 싶은 걸?
5. 빈 잔 위에 얹힌 질문
아침, 나는 홀로 일어났다. 침대 시트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머리맡에는 승민이 남긴 빈 소주 잔 하나. 유리 속에 남은 방울이 햇살에 반짝였다. 나는 그 방울을 보았다.
그는 뭘 원했을까.
내가 뭘 원했을까.
우리는 왜 서로를 피했을까.
6. 마지막 한 방울
잔을 들어 올렸다. 남은 한 방울이 내 손끝으로 흘러내렸다. 차가운 술이 손등에 닿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선을 그었다.
그 선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피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7. 빈 침대, 남은 온도
침대는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내 몸은 차갑게 식는다. 착한 남자들은 안전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안전 뒤에는 텅 빈 침대만이 남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만이 자라난다.
그래서 나는 떠난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아서.
위험한 선을 넘는 순간의 긴장을 원해서.
8. 떨리는 너의 숨소리, 다시
손끝이 소주병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너의 숨소리를, 나는 아직도 듣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넘어야 할 선을 넘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를 잃었다.
당신도 안전한 걸 원했나요.
아니면 안전하지 않은 척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가요.
그리고 당신의 연인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빈 잔 위로 햇살이 내려앉는다. 유리는 반짝이지만, 그 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기록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