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누가 먼저였는지도 모를, 그 입술을 뺏은 밤

절친과 한 모금의 키스가 남긴 불타는 자국.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뜨겁게 갈망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서글프게 무너졌는지.

삼각관계배신키스친구와연인질투
누가 먼저였는지도 모를, 그 입술을 뺏은 밤

“지수야, 여기.”

윤아가 반쯤 취해서 내뱉은 한 마디가 공기를 갈랐다. 침대 끝에 앉아 있던 나는 그녀의 손끝이 볼을 스치는 순간, 목끝까지 달아올랐다. 술보다 달콤하고 숨막히는 불길이 식은 재떨이 위로 떨어졌다.

지수—그녀의 남자친구, 나의 4년 차 연인—는 아직 화장실이었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눈치 따위는 없었다. 윤아의 입술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감각, 살짝 스친 혀끝의 숨결이 머릿속 한복판에 불을 지폈다. 이건 키스야, 키스야. 아니, 범죄야.

윤아는 눈을 감았다. 나도 감았다. 두 쌍의 눈꺼풀이 닫혀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검은 실이 뱀처럼 침대 위를 휘감았다. 우리가 알던 모든 이름표는 그날 밤 뒤집혔다. ‘친구’, ‘연인’, ‘경계’라는 단어들이 얼음 위에서 부풀어 터졌다.

왜 하필 윤아였을까. 그녀는 내가 가장 선명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지수의 가슴이 뛰는 패턴, 그가 좋아하는 향수, 잠든 뒤 뱅글뱅글 도는 팔의 각도까지.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모르겠다. 내가 지수의 입맞춤을, 윤아의 눈빛을, 둘 다 빼앗고 싶던 순간—정체 모를 탐욕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입맞춤은 단순한 신체 접촉이 아니라, 사유지 표지를 찢어버리는 행위였다.

잠시 후, 지수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손에는 맥주 캔이 들려 있었다. 그는 우리가 떨어진 숨을 금새 알아챘을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나는 여전히 윤아의 입술이 남긴 미세한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지수는 말없이 벽에 기댔다. 우리 셋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 더 뜨거운 불꽃이 되어, 벽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며칠 뒤, 민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동갑내기 사촌언니 혜진과 3년 차 남자친구 재민을 두고 있던 그녀가.

우리도 그랬어. 아니, 내가 먼저였지.

민서는 소파에 앉아 혜진의 목덜미에 숨을 불어넣었다. 재민은 TV를 보는 척했고, 혜진은 눈을 감았다. 민서는 그 장면을 재민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게 더 짜릿했거든.”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운 그 순간, 세 사람은 동시에 ‘몰래’를 연기했다. 아무도 손을 먼저 내밀지 않았지만, 모두 손등에 닿은 열기를 느꼈다. 혜진은 눈치를 챘고, 재민은 꿈꾸는 척했으며, 민서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줬다.

우리는 왜 타인의 것을 더 달게 느낄까. 무단침입의 쾌감, ‘절대 안 돼’라는 경고판을 넘어선 순간에만 진짜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차지할 수 없는 상대에게 느끼는 따뜻함이지, 내 것이 됐을 때 타오르는 불씨가 아니다.

지수는 아직도 모른다.

그날 밤, 윤아가 내 뺨을 스친 뒤, 나는 눈을 떠서 본 게 지수의 눈이었다. 그는 벽에 기댄 채,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말했다. 이제 넌 내가 아니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눈빛과 마주친 순간, 내 몸은 뒤틀리듯 움츠러들었다. 입안이 쓰고 떨렸다. 윤아의 숨결이 여전히 목끝에 살아 있었고, 지수의 시선은 그 숨결마저 뺏으려는 듯 날카로웠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한 가지를 깨달았다.

우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태로웠다. 지수도, 윤아도, 나도. 한 명의 키스로 세 사람의 이름이 뒤섞였고, 그 뒤섞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나쳤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그럼 난 누굴까? 답은 없었다. 다만, 지수의 눈에서 반사되는 내 모습이 낯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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