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연락처 줬는데 72시간째 침묵… 나는 왜 아직 ‘읽씹’을 기다리는가

‘연락 올까?’라는 기대 뒤에 숨겨진 우리의 어두운 욕망과 두려움, 그리고 당신은 왜 여전히 화면을 새로 고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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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줬는데 72시간째 침묵… 나는 왜 아직 ‘읽씹’을 기다리는가

“혹시 문자 와서 못 봤나?”

밤새 두 손으로 휴대폰을 쥐었다 폈다 한다. 화면을 껐다 켰다. 알림창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올렸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가 돌아서서 한 마디 했다.

“번호 줄까?”

그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손에 쥐어진 종이가 아니라, 내 심장이 그녀 손바닥 위에 올려진 느낌이었다. 귀가해서 번호를 저장하고 나서도 한참을 바라봤다. 누구에게 먼저 연락해야 할까, 언제가 적당할까, 뭐라고 시작해야 할까. 수십 번의 문장을 써놓고 지웠다. 그리고 72시간째, 침묵이다.


숨겨진 계산

왜 아직 아무것도 안 온 게 이토록 서늘하고 달콤한가. ‘아직’이라는 단어 안에 겹겹이 쌓인 내 욕망이 있다. 설마 그녀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내가 먼저 하면 뒤집어지는 건 아닐까?

침묵은 언제나 거꾸로 된 희망이다. 아무 말도 없으니까 무한대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녀가 지금쯤 내 카톡 프로필을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 있을지도, 아니면 수백 명의 남자들 틈에서 내 이름을 골라내려 고민 중일지도. 나는 이 침묵 위에서 자유로운 가상현실을 짓는다. 읽씹이라는 단어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먼저 찾아온다.


지수는 36시간 만에 지쳤다

‘저… 오늘 뵀는데, 술 좋아하시나요?’

이문장을 쓰고 나서도 지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홍대 앞 살롱에서 어깨를 스친 그녀의 이름은 하린. 파마 냄새 섞인 헤어롤 사이로 코 끝에 남은 머스크 향이 아직도 옅다. 번호를 받고 나오는 길, 지수는 지갑에 쑥 넣어둔 영수증 위에 번호를 적었다.

36시간이 지나자 눈꺼풀이 당겼다. 시계는 새벽 세 시. ‘하린’의 프로필 사진은 아직도 카톡 기본 그림이었다. 그녀가 온라인 상태인 푸른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혹시 나를 지운 건가? 불안감이 기름처럼 퍼졌다. 지수는 결국 맥주 한 캔을 따고, 두 번째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바빠요?’라는 한 줄. 곧이어 나온 답은 짧았다.

‘죄송해요, 전 사실 남자친구 있어요.’

버블이 톡 죽는 소리만 방 안에 길게 남았다.


혜민은 100시간을 버텼다

혜민은 100시간을 기다렸다. 오프라인 스터디에서 만난 ‘재민’과 눈이 마주친 순간, 혜민은 무언의 약속을 읽었다. 숫자를 교환할 때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손에 스르륵 스며들었다.

하지만 재민은 침묵했다. 혜민은 처음에는 ‘신사적인 거지?’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불쑥 연락하면 내가 불편해할까 봐. 그러다 72시간이 지나자, 다른 생각이 스멀거렸다. 혹시 내가 별로였나? 4일째, 혜민은 동기들과 술자리에서 재민의 번호를 지웠다가, 다시 복구했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는 ‘공부 재밌었어요 :)’였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혜민은 재민의 1초 전 ‘읽음’ 표시를 붙잡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읽음’마저 없어져 있었다. 차단된 것이다. 100시간의 침묵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금기의 달콤함

우리는 왜 이 침묵에 이끌리는가. 왜 ‘아직’이라는 말 한마디에 목을 매는가. 그건 은밀한 놀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내가 지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이기는 것일지도. 두려움과 욕망이 한 몸인 순간, 우리는 카운트다운을 즐긴다.

연락처가 주어진 순간, 우리는 이미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죄수의 딜레마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파고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선택지가 된다. 선택받지 못하면 끝이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 위로 미래를 그린다. 그녀가 먼저 연락할 확률은 점점 낮아지지만, 우리는 ‘0%가 아니다’라는 숫자를 마지막 희망으로 붙잡는다.


당신은 지금 몇 시에도 카톡을 열어보는가

혹시 지금도 화면을 켜고, 그녀 이름을 검색하고, 지난 대화를 다시 읽고 있진 않은가. 혹시 ‘나중에 보내려고 미뤄뒀던 사진 하나’를 꺼내서 다시 보고 있진 않은가. 그리고 혹시, 그 침묵 속에서 아직도 당신 자신을 선택받지 못한 아이로 남겨두고 싶은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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