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의 몸 된 거잖아”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을 때, 그가 던진 말이었다. 담배 연기처럼 하얀 벽에 번져 내렸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벌거벗은 발바닥이 차가운 대리석을 느꼈다. 아직도 그때의 온도를 기억한다.
1. 혜진, 34세
옥상, 점심시간. 동기 지환이 물었다.
“야, 아직도 그 X같은 소리 기억나?”
혜진은 담배를 뻑뻑 피웠다.
“나 때문에 내 인생이 꼬였다더라.”
그녀는 담배를 껐다.
“나도 있어. 내가 뭐라고 했는지.”
왼손 검지로 잿빛 하늘을 가리켰다.
“너 때문에 내가 너처럼 될까 봐 무서웠다.”
김현수가 말했다. 십 년째 그 문장이 혜진의 관자놀이를 핥는다.
2. 미진, 29세
약국. 8년 만에 준혁이 문을 열었다.
“미진 씨.”
처방전을 받으며 손이 떨렸다. 병풍 너머, 준혁의 눈동자가 미소 짓는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내가 너무 사랑해서 미쳤다고.”
준혁은 대답했다.
“그건 사실이었어요.”
미진은 병실로 돌아가며 속삭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3. 나
십 년이 지났다. 그 한 마디는 여전히 내 몸에 박혀 있다. 새벽마다 눈을 뜨면 목덜미가 간지럽다. 혓바닥이 떨어진 자리, 그 말이 핥는다.
재회를 꿈꾸는 게 아니다. 그 말을 없애고 싶을 뿐이다. 그 한 문장을 지워서 다시는 꿈에 나오지 못하게, 다시는 새 연인의 뺨에 내뱉지 못하게.
4. 거울 앞에서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 선다. 눈 밑 그림자를 만진다. 그 말이 빠져나올 구멍이 있을까.
이제 남의 몸 된 거잖아.
나지막이 따라한다. 혀끝이 굳는다. 문장은 내 목구멍 안쪽에서 살아 움직인다.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다. 그 말은 이미 내 살이 되었다.
5. 끝맺음
혜진은 아직도 옥상에서 담배를 피운다. 미진은 약국에서 하루 세 번 그 말을 되뇐다. 나는 밤마다 이불을 차며 중얼거린다.
다시 만나면 그 말을 지울 수 있을까. 아니, 더 깊이 새길까. 나는 모른다. 다만, 그 한 마디가 십 년째 이 몸을 핥고 있다는 사실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