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목을 놓았다… 아내의 소리를 남편은 들은 적 없다

15년째 눈물로 끝나던 관계, 그녀가 처음 진심으로 숨 넘어간 날 남편은 거실에 있었다. 도청하듯 엿들은 진실, 그리고 그녀가 숨긴 욕망의 속살.

결혼욕망침묵배신진실

0. 오후 11시 47분, 잠금 해제 소리

아이들이 잠든 뒤, 채련(42)은 소파에 앉아 남편 민석(43)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민석은 노트북 화면에만 파묻혀 있었다. 15년 차 부부의 밤은 언제나 이 모습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삼켰다. 유리잔에 남은 맥주를 홀짝이며 발가락으로 카펫의 숫돌을 그렸다. 발끝이 차가웠다.

민석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앞으로 회식 늦으면 먼저 자, 알지?”

채련은 대답 대신 핸드폰을 꺼냈다. 잠금 해제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화면에 떠오른 건 15년 전 대학 MT 사진이었다. 사진 속 자신은 처음 만난 선배의 어깨에 턱을 괴고 있었다. 선배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등 위를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그 찰나의 떨림이 아직도 손끝에 살아 있었다.


1. 6월 3일, 토요일, 서울 논현동 자취방

“여기, 얼굴 누르지 마.”

미진(42·회계사)은 그날도 남편 정호(45·로펌 변호사)가 잠든 뒤, 혼자 거실로 나왔다. 남편은 주말마다 새벽 두 시까지 법전을 뒤적였다. 그녀는 키친 테이블 위에 올려둔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검색창에 **‘여성 첫 오르가즘 나이’**를 쳤다. 37세, 39세, 42세… 숫자만 난무했다.

미진은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뜨거운 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5년 전, 회사 워크숍에서 마주쳤던 후배 재영(당시 29세)을 떠올렸다. 재영은 그녀가 프린트를 뽑으러 왔을 때 흰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복사기 옆에 서 있었다. 땀에 젖은 손가락이 종이 위로 스르륵 미끄러지는 광경. 그날 밤, 미진은 숙소 침대에 누워 눈을 꼭 감았다.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스물하나, 스물둘… 그러다 잠이 들었다.

그녀는 샤워기를 껐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손바닥으로 안면을 훔쳤다.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왜 그때 웃지 못했을까.’

그날 이후 미진은 정호의 ‘오늘도 늦는다’는 문자에 ‘머리가 너무 아파요’라고 답장했다. 머리가 아픈 건 거짓이었다. 진짜 아픈 건 손끝이었다. 아무 것도 만질 수 없는 허공이었다.


2. 9월 12일, 목요일, 판교 테크노밸리 지하주차장

“오늘 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으로.”

수진(39·UX 디자이너)은 남편 영준(41·스타트업 CTO)의 메모를 발견했다. 영준은 차 키를 테슬러 센터콘솔 위에 올려두고 일어났다. 수진은 남편이 말없이 사무실로 올라가는 걸 지켜봤다. 그녀는 메모를 손바닥으로 말아 넣었다. 혼자 남은 차 안에서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 **‘판교 CGV 3층 뒷문’**이라는 지도 핀이 떴다. 그곳은 15년 전, 그녀가 24살 때 처음 키스했던 장소였다. 키스의 상대는 당시 27살이던 대학 선배였다. 선배는 영화가 끝난 뒤, 어두운 복도에서 그녀의 손등을 잡았다. 손등에서 손가락으로, 손끝으로… 반짝이는 네온사인 아래, 그녀의 첫 숨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수진은 차에서 내렸다. 지하주차장의 형광등이 눈부셨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 그녀는 혼자 탔다. 1층, 2층, 3층… 숫자가 올라갈수록 심장이 떨렸다. 문이 열리자 냄새가 먼저 왔다. 구닥다리 팝콘 향. 그녀는 천천히 어두운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손전등도 없이, 그저 벽을 짚으며. 그녀는 문득 그날의 선배를 떠올렸다. 선배는 지금은 연락이 끊긴 채 미국에 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어디야?’**라는 메시지를 타이핑했다. 그러나 발신 버튼은 누르지 못했다.

그녀는 복도 끝에 선 채,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봤다. 빛이 깜빡였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왜 아직도 이곳에 서 있을까.’ 그녀는 영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먼저 들어갈게. 피곤해.’ 거짓말이었다. 진짜 피곤한 건 그녀의 머릿속이었다. 15년 전의 첫 키스가 아직도 그녀의 입술 위에 남아 있었다.


3. 그날 밤, 거실

채련은 민석이 잠든 뒤, 혼자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형광등이 아주 약하게 깜빡였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왜 지금까지 참았을까.’ 그녀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천장 그림자 위로 미끄러졌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민석과의 첫 데이트, 첫 키스, 첫 번의 섹스… 모두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손가락은 그저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발가락이 카펫의 숫돌 위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왜 아직도 여기 서 있을까.’ 그녀는 천천히 복도로 걸어갔다. 침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민석은 코를 골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검색창에 **‘결혼 15년 부부 오르가즘’**이라고 쳤다. 그러나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화면은 그저 검은색으로 변했다.

채련은 천천히 핸드폰을 꺼냈다. **‘그날 밤, 왜 비명을 질렀을까.’**라고 썼다. 그러나 발신 버튼은 누르지 못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건 비명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15년 만에, 자신의 숨결을 들었다. 숨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는 시작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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