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눈을 맞추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하늘은 참 맑네."
정우가 옆자리 여자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걸 봤다.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정우의 손끝이 그녀의 허리를 스치고 있었다.
나는 15미터 떨어진 뒷골목에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손에는 집에 가자며 사온 치킨이 들려 있었다. 양파 김치를 하나도 안 넣어달라고 했는데, 그것마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왜 나는 숨지 않았을까
도망치지 않았다.
차라리 그녀에게 달려가 "뭐 하는 거야"라고 소리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깊이 숨었다. 뒷골목 그림자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이게 뭔지 알겠어. 네가 원하는 거, 내가 아니라 네가 직접 걸어가서 목격하는 거."
그 순간 내 안에선 뭔가가 반응했다. 배신감이 아니라, 더 어두운 무언가. 마치 오래 묻어두었던 자료를 찾아낸 사람처럼, 나는 이 치명적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3월 17일, 지훈의 사연
"형, 나는 그냥 거기 서 있었어."
지훈이 목요일 새벽 3시에 카톡을 보냈다. 동아리 후배인 그는 어느 클럽 화장실 앞에서 여자친구 '서연이'가 남자 둘과 같이 나오는 걸 봤다고 했다. 서연이는 한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지훈은 30분 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온라인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휴대폰 게임 화면은 그대로 켜져 있었다. 레온이 총을 쏘고 있었지만, 지훈은 그조차 볼 수 없었다.
"근데 형, 이상하잖아. 화가 나기는 하는데... 뭔가 더 강한 게 있었어. 마치... 마치 내가 기다렸던 느낌?"
그녀의 SMS가 도착했을 때
나는 정우와의 3년 관계를 끝낸 뒤였다. 아니, 끝낸 게 아니라 그날 밤 후로 아무 말도 없었다.
다음 날 오후, 정우에게서 왔다.
[정우]
어젯밤 좀 이상했어.
너 아무 말도 안 했잖아.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또 보냈다.
[정우]
우리 뭔가 잘못된 거 같아.
얘기 좀 하자.
하지만 나는 이미 그녀가 다른 누군가와 있을 때 내가 느낀 그 감정을 다시 경험하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그날 밤의 치킨은 아무 맛도 없었다. 하지만 그 맛없음 속에서도 어떤 결맛이 났다.
왜 우리는 직접 목격하길 원하는가
심리학자 고든 개빈은 '자기증명욕구'라는 말을 썼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깊은 것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배신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단순히 사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충격의 순간을 내 눈으로 보고 싶어한다. 마치 어두운 동굴 끝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이는 단순한 집착이 아니다. 이건 욕망의 지배권이다. 네가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권력을 갖게 된다. 너는 배신했지만, 나는 그 배신의 전모를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권력 말이다.
"당신은 떠났지만, 당신이 떠났던 그 순간까지 당신은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모르지."
그래서 나는 아직도 달린다
나는 아직도 그날 밤의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 속도를 늦춘다. 아직도 그녀가 다른 이의 품에 안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치 그날의 나처럼, 이번엔 또 누가 숨어 있을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또다시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또 나를 배신할 때, 나는 또다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정우는 아직도 내가 왜 그날 뒤돌아서지 않았는지를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평생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왜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왜 차라리 그 충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길 원했는지를.
마지막 질문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연인은 어디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왜 확인하러 가지 않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