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왔어요?”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고개는 내가 아닌 커피잔 쪽으로 살짝 기울여졌다. 그게 익숙한 시선. 한 달째 그는 매일 오후 3시, 창가 쪽 2인 테이블에 앉아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를 바라지 않았다. 가만히.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으니까.
네가 먼저 와야 해
‘그가 오늘도 왔다면, 나도 모를 틈에 미소 지었을 거야. 하지만 그 미소를 숨기는 척했다. 그래야 그는 계속 바라볼 테니까.’
우리는 ‘바라보기’라는 언어를 꿰뚫고 있었다. 눈 맞음, 시선 교환, 은근한 미소. 그 모든 것이 아니었고, 모든 것이었다. 한 발짝만 더 다가가면 금지된 지역이 열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아직은’이라는 말을 삼켰다.
그날, 나는 발을 뗐다
어느 날, 그가 눈을 피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시선이 식었다. 창밖을 보고,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 눈빛이 왜 사그라드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질투 나게 만들었나 봐.’ 작은 말다툼이라도 있었던 양 기분이 상한 척 연기했다. 그러다 문득,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카운터로 걸어가 그의 테이블 옆을 지나쳤다. 고의였다. 한 걸음, 두 걸음—그와의 거리가 1미터씩 좁혀졌을 때, 그가 갑자기 일어섰다. 유리문을 밀쳐, 거리를 획 늘렸다. 나는 서 있고, 그는 문 너머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 말도 나눈 적 없는데도, 허탈함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실제 같은 이야기 1: 미소 뒤의 공포
지은(32)은 매주 월요일마다 사내 복도에서 ‘준혁’이라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인사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지은은 그 눈빛이 자신만의 것이라 믿었다. 준혁이 눈을 피하는 날이면, 지은은 사내 메신저로 “오늘 커피 안 마셨어?” 하고 물었다. 준혁은 짧은 “ㅇㅇ”로 답했고, 지은은 그 짧은 대사 하나로 하루를 견뎠다. 한 달이 지나자 지은은 “점심 같이 먹을래?”라는 문자를 보냈다. 1분, 2분… ‘읽씹’ 상태로 남아 있던 메시지는 5분 만에 회색으로 변했다. 지은은 이후로 준혁이 복도에서 나를 피해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짜 좋아했는데… 어째서 도망가는 걸까요?”
실제 같은 이야기 2: 승리의 쓴맛
미소(29)는 인스타그램 팔로우 요청만으로도 3년째 짝사랑하던 동호를 ‘만졌다’. 요청 승인은커녕 차단됐다. 미소는 동호의 프로필 사진을 확대해, 눈동자 색조마저 외웠다. 동호가 올린 스토리마다 ‘좋아요’를 누르고, 실수로 ‘하트’를 두 번 연타해 취소했다가 다시 누르길 반복했다. 어느 날, 미소는 동호의 친구 결혼식 사진을 보고 “축하해요”라며 댓글을 달았다. 12시간 뒤, 동호는 계정을 비공개로 돌렸다. 미소는 “내가 승리한 거야”라며 스스로를 달랬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고 침대에 누워 울었다. “이제는 그 아이도 없어. 나만의 동호는.”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누군가의 연인이 된다. 손도 안 대고, 키스도 없이. 나는 그의 눈빛 속에 갇힌 채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만끽한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욕망은 결핍을 통해 작동한다’고 했다. 우리는 상대에게서 ‘결핍’을 보고 사랑한다. 상대가 나를 원하고 있지만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그 결핍이 곧 나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래서 상대가 다가오면, 그 결핍이 사라진다. 결핍이 사라지면 욕망도 사라진다. 그래서 ‘도망’은 욕망의 연장선이다. 상대가 아닌, ‘욕망하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
마지막 질문
그가 앞으로 다시 와도, 너는 이번엔 정말로 다가갈까? 아니면 조금 더 오래, 그 시선의 끝에서만 맴돌며 욕망을 숨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