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 라는 문자는 3주째 회색체크다
잠입하듯 엿보던 그의 인스타그램이 어젯밤 갑자기 비공개로 바뀌었다.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며 다시 새로고침. 여전히 회색 프로필. 이건 뭐지, 마치 내가 사라진 거야.
나는 그의 아파트 복도에 서서 우체통을 열어봤다. 405호. 초록색 고지서들이 쌓여 있다. 관리비, 전기세, 휴대폰 요금. 누군가는 여전히 여기 산다는 뜻. 그런데 왜 나한테는 죽은 사람처럼 사라졌을까.
사라질수록 선명해지는 윤곽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는지 알려줘. 그래야 고칠 수 있어.
고칠 수 없어. 난 그냥... 싫어졌어.
그때의 대화를 천 번도 더 떠올렸다. '싫어졌어'는 '미워졌어'보다 더 잔인했다. 미움은 적어도 감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싫음은 공기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게 시작이었다. 그가 눈앞에서 사라질수록 내 머릿속에서 그는 더 선명해졌다. 손톱 끝에서 잘려 나간 그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침대 시트에 남은 그의 몸냄새 조차도.
지우는 대신 채워가는 기억
민서는 32살, 마케팅 에이전시 팀장이다. 남자친구 재혁이 사라진 지 47일째.
너는 왜 매일 와?
재혁이 많이 남겨놨거든.
뭐를?
냄새. 손때.
그녀는 재혁이 쓰던 머그잔에 하루도 빠짐없이 아메리카노를 타 마신다. 잔이 금이 가서 끝부분이 조금 까졌는데도 버릴 수 없다. "여기서 입을 댔을 거야" 하고 혼자 말한다. 그녀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재혁의 DNA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화요일 아침, 민서는 재혁의 칫솔을 들고 화장실에 갔다. 3주째 사용 중이다. 모가 다 빠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세게 문질렀다. 그의 입 안이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실제로 그와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사라진 사람의 옷장 속에서 숨쉬기
혜진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그가 두고 간 후드티를 입고 그의 아파트 복도를 서성였다. 경비아저씨가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지만 상관없다.
씻으세요?
아니요. 향기가 다 빠져나갈까 봐.
그녀는 그가 입었을 법한 날씨를 계산해서 옷차림을 맞췄다. 10월 18일, 재킷 대신 가죽집업. 그날 둘이서 영화관 갔다가 맥주 한 잔 하며 키스했던 날. 지금쯤이면... 혜진은 눈을 감고 상상한다. 그가 여기 있다면, 나를 어떻게 안았을까. 어떤 냄새를 풍겼을까.
그녀는 매일 밤 그의 옷을 벗어놓고 자신의 누드사진을 찍었다. 빈 옷 위에 나를 올려놓는 것. 살아있는 내가 죽은 옷을 채우는 것. 그 사진들을 보며 혜진은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느꼈다. 혼자인데도, 아니 혼자라서 더 강렬하게.
왜 우리는 사라진 대상에 열광하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사자상 집착'이라 부른다. 사자는 먹이를 죽인 뒤에도 계속 물고 흔든다. 생명력이 이미 끊겼는데도. 인간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잔상을 붙잡는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사라진 사람은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 상처를 주지 않는다.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계속 재해석된다. 그가 진짜로 떠난 게 아니라 '잠시 멀어진 것'이라 믿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민서는 재혁이 새로운 여자를 만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발견했다. 둘이서 웃고 있는 모습. 그 순간에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민서는 더 깊게 빠졌다. 내가 아니라면,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해야 해.
마지막으로 남겨둔 것
오늘도 나는 그의 칫솔로 양치한다. 모가 다 빠진 상태지만 입 안에 넣는 순간, 그의 혀가 내 혀 위에 올라오는 것만 같다. 문득 든 생각.
혹시 너는 내가 이렇게 너를 먹어치우고 있는 걸 알고 있을까. 아니, 알았다면 일부러 남겨둔 걸까.
사라진 사람을 원하는 건 결국, 사라지고 싶은 나 자신을 투영하는 게 아닐까. 끝내지 못한 관계 끝에서, 나는 영원히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사라진 남자의 흔적을 입에 넣고, 삼킨다. 그리고 그래도 공허하다. 그게 바로 진짜 욕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