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쉬고 싶어"
"조금만 떨어져 있을래?"
카페 모서리 테이블, 나는 말했고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 때까진 몰랐다. 표정이라는 게 단순한 근육의 움직임이 아니라는 걸.
얼굴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였을 뿐인데, 눈꺼풀이 내려앉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뺨이 살짝 뜨거워졌다. 눈동자는 반짝이면서도 눈물기가 언뜻 스쳤다.
나는 그 장면을 눈에 새겼다. 이게 진짜 얼굴이다, 하고.
눈에 띄지 않는 전율
거리를 두자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가지 중 하나를 보인다.
첫째, 당황. 둘째, 분노. 셋째, 경계.
그러나 네 번째가 있다.
공포.
그 공포는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아니라, 평생 숨겨온 진짜 모습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연인이 내 앞에서 벽 하나를 허물면, 그 사이에 숨겨둔 무언가가 서랍에서 튀어나온다. 때로는 아이처럼 초라한 욕망, 때로는 광인의 집착.
우리는 늘 연기한다. 애정이라는 이름의 연기. 그러나 거리를 달라는 말 한마디가 스포트라이트를 켜면, 무대 뒤로 숨어있던 본색이 인형 탈을 벗고 말한다.
그날 밤, 유리가 말했다
"그가 문을 두드렸을 때 난 처음 봤어. 눈이 뒤집혀 있더라고."
유리는 내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한 달 전 남자친구에게 휴식을 요청했다가, 결국 경찰에 신고까지 하는 사단이 났다.
나는 잠깐만 멀어지자고 했는데, 그가 창밖을 3시간이나 서 있더라고. 눈이 초점이 없었어. 나중에 알았는데, 그날 새벽 네 시에 집 앞 CCTV에 비친 표정이... 눈이 너무 커져 있어서 사람 같지 않았대.
유리는 거기서 멈췄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그 표정을 본 순간, 사랑이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더라고.”
준호는 미소를 지었다
준호는 달랐다.
거리를 두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 매끄러웠다.
그러나 나는 뒷골이 서늘해졌다. 눈가가 움직이지 않았다. 입꼬리만 올라간, 그래서 더 무서운 얼굴.
‘네가 떠날 수 있을 만큼 멀리 가봐. 어차피 다시 내게 올 테니까.’
그 생각이 눈동자에 새겨져 있었다. 내가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아니면, 오히려 내가 봐주기를 바랐던 건가.
우리는 왜 끌리는가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집착의 반동은 버림받을 것이라는 공포라고. 맞는 말이지만,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우리는 상대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
사랑이란, 결국 낯선 영역을 탐험하는 일. 내가 모르는 당신의 방 한 칸을 여는 일.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살짝 문을 열어둔다. 혹시 나를 미워할까 봐, 혹시 나를 놓칠까 봐.
그리고 문이 살짝 열릴 때 비춰지는 붉은 눈빛, 너무나도 선명한 욕망의 얼굴. 우리는 그 얼굴을 보며 속으로는 짜릿함을 느낀다. 역시, 너도 나를 끝까지 놓지 못할 거야.
그래서 나는 아직도
"거리를 두고 싶다"고 말했던 그날, 그가 보인 표정.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독점이었는지, 아니면 두려움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알겠다.
내가 다시 그 얼굴을 마주칠 때, 나 역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당신은 과연 떠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 표정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