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오후 세 시, 로비에서 그가 물었다
"혹시 오늘 저녁, 시간 되시나요?" 그 질문이 날아오는 순간, 나는 스쳐 지나가는 호텔 직원의 눈빛을 마주쳤다. 시계는 3시 17분. 아래층 카페에선 아메리카노 세 잔값이 16,800원. 그가 내민 시그니처 펜은 160만 원 한정판. 나는 두 손에 든 노트북 가방이 13만 5천 원짜리라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이건 스폰도 아니고, 소위 '밀알'도 아닌데… 왜 내 심장이 이렇게 뛰지?
그는 말했다. 집값에 가격이 붙지 않는 전시 작품 구경이라도 한다는 듯이. 나는 대답 대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끝을 때릴 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의 목선을 따라 흘렀다.
욕망의 해부: 우리는 왜 ‘돈 안 받으면 괜찮다’고 속이는가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뭔가를 받는다. 숨겨진 카메라가 아닐까 두려워 하면서도, 혹시 이 장면이 영화 한 장면처럼 포착되고 있지는 않을까 상상한다. 유리창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는 누군가—경쟁자, 전 애인, 혹은 내일 나 자신—에게 나는 지금 어떤 여자로 보일까?
결국 욕망의 단위는 ‘원’이 아니라 ‘프레임’이다.
‘나는 몸을 팔지 않았다’는 말은, 한낱 변명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나는 더 귀중한 걸 넘겼으니까. 시간, 명예, 아니면—더 잔인하게—미래의 나 자신의 가능성. 그날 나는 돈 대신 이미지를, 떳떳함 대신 밀렵의 설렘을 받아챘다.
실제 같은 이야기: 지은이와 유나, 그리고 두 번째 주문
1. 지은, 29세, 브랜드 마케터
신발값이 43만 원인데, 지난달엔 체불된 보너스 때문에 연체료만 12만 원 나갔다. 그는 말했다. 오늘 대관료, 제가 부담할게요. 그 말에 지은의 손목이 식었다. ‘대관료’—그는 미술관 1층 전시실을 통째로 빌렸다. 지은은 3층 샤넬 팝업을 기획하던 참이었다. 그날 밤, 지은은 침대 머리맡에 뒀던 손목시계—20만 원짜리 스와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게 200만 원짜리 로렉스였다면, 나는 지금 뭐가 달라졌을까?
그는 지은에게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다만 밤새 커피를 내려주며, ‘당신이 떠나면 나도 떠날게’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침 일곱 시, 지은은 전시장 복도에서 혼자 신발 끈을 고쳐 매며 울었다. 돈은 한푼도 받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다음 달 보너스 폭락 소식을 듣고, 밤마다 죄책감에 눈을 떴다.
2. 유나, 33세, IT 스타트업 대표
유나는 사내 규정상 임원이 ‘접대성 만찬’에 참석해선 안 된다. 그러나 그날은 회사의 2억 규모 시리즈A가 걸려 있었다. 투자사 파트너는 말했다. 식사 그 이상, 그 이하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유나는 파트너의 핏줄 같은 그레이 턱시도를 보고, 어젯밤 슬랙으로 온 ‘임원 성비율 리포트’를 떠올렸다. 투자계약서에는 ‘女 최소 1인 이상 임원 진입’이 확인 란으로 붙어 있었다. 그녀는 식사 내내 누른 와인 한 잔 값 280달러를 계산하며, 이건 회사 손실이다라고 되뇌었다.
그녀는 침대보다 회의실에서 더 많이 눈을 맞춘다.
밤이 끝나고 유나는 택시를 탔다. 투자사 파트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다음날 오전 9시, 메일 한 통이 왔다. 제목은 ‘CONGRATS :)’였다. 유나는 아무도 모르게 2억을 받았다. 그 대가는—몸이 아니라— 그녀의 무표정이었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금기를 지킬수록 흥분한다
금기는 벽이 아니라 문이다. 문을 두드릴수록, 반대편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욕망은 상상에 끌리지만, 금기는 상상을 절대적으로 날카롭게 만든다.
심리학자 브라이언 마스터즈는 말했다. ‘가능성 0%’보다 ‘0.01%’가 더 흥분을 유발한다고. 왜냐하면 우리는 거의 다 해낸 상황을 더 뜨겁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돈을 받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규칙을 깨뜨리는 대신, 규칙 안의 새로운 규칙—‘받지 않으면 되지 않나?’—을 만든다. 그리고 그 허점을 자랑스럽게 키운다.
결국 우리가 몸을 팔지 않은 날, 우리는 더 비싸게 팔았다. 침묵. 미래. 자기 연민. 세 가지는 모두 현금보다 훨씬 무겁다.
마지막 질문: 당신은 무엇을 넘기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가
당신의 금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금기 뒤에 숨은 욕망은 무엇인가. 그날 나는 흰 셔츠 단추 하나 풀지 않았지만, 거울 속 나는 벌써 눈을 감았다. 당신은 아직도 단추를 여미고 있는가, 아니면—이미—어디선가 버튼이 떨어져 나간 소리를 들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