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테이블 위에 떨어진 에스프레소 방울이 말라가는 동안, 나는 지수의 아랫입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세 번째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리잔을 얹고 있던 손가락을 떼서 이마에 살짝 댔다가, 이내 내 눈과 마주쳤다. 그 찰나에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건 꿈이 아니야. 지금 당장 이 테이블 위에 눕혀도 되는 거야.
수학으로 풀어낸 유리잔과 입술의 거리
우리 사이엔 아직 47mm가 남아 있다. 손등과 손등, 뜨거운 라떼와 차가운 손가락 사이. 그 거리를 지수는 의도적으로 유지한다. 손잡이를 잡을 때조차 손바닥이 아닌 손끝만 살짝 걸치는, 마치 그것이 아닌 다른 걸 잡고 싶어서라는 듯이.
나는 이제 그녀의 속눈썹이 몇 개인지도 안다. 왼쪽 94개, 오른쪽 92개. 이상하게 한쪽은 더 적다. 그래서 나는 눈을 마주칠 때마다 왼쪽을 먼저 훔쳐본다. 먼저 훔쳐봐야 내가 지는 게 아니라는 착각처럼.
그녀가 웃을 때마다 혀끝이 살짝 드러난다. 나는 그 혀끝이 입술을 핥을 때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던지는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긴장한다. 그건 착각일까. 아니면 고의일까. 나는 그녀가 떠난 뒤 남은 스푼을 들어 혀가 닿았던 부분을 핥아본다. 쓴맛일 줄 알았는데, 짜다.
두 명의 지수, 두 개의 거짓말
첫 번째 지수: 3월 17일, 11시 47분
회사 흡연실. 지수는 연초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말했다.
나는 입술에 민감해요.
꼭 키스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누군가가 제 입술을 보면서
숨을 멈추는 게 보고 싶어요.
나는 어깨에 낀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려다 멈췄다. 손에 든 담배를 길게 내뱉으며, 그녀가 한숨처럼 내뱉은 말이 내 귀에서 맴돌았다. 그녀는 재킷을 받지도 않고 흡연실을 나섰다. 그날 밤 나는 그녀의 재킷이 아닌, 담배 연기를 품고 잠들었다.
두 번째 지수: 3월 21일, 새벽 2시 12분
카톡방에 올라온 지수의 사진 한 장. 클럽 화장실에서 찍은 셀카. 붉은 립스틱이 번져 있고, 눈꼬리는 춤을 추다 만 듯 치켜올라 있다. 사진 밑에 달린 댓글은 단 하나. '누구랑 간거야?' 그녀는 7분 뒤 '혼자'라고 답했다. 그때 나는 잠에서 깨어나 그 사진을 스크린샷했다. 그리고 47번째로 확대해서 그녀의 왼쪽 목덜미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아직 어둑한 자국이 없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손길이 아직은 없다는 뜻이다.
왜 우리는 입술에 홀리는가
입술은 피부의 연장이지만, 동시에 내부의 시작이다. 볼 때마다 나는 그녀의 위장, 폐, 심장까지 들여다보는 착각에 빠진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구강기적 회귀'라고 부른다. 어린아기가 젖니 빠진 어미의 젖을 빠는 순간의 기억이, 성인의 입맞춤 욕망으로 승화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 더 단순하다고 본다. 우리는 단지 누군가의 숨을 먼저 차지하고 싶은 것뿐이다. 말하기 전의 숨, 거짓말하기 전의 숨, 사랑한다 말하기 전의 숨.
지수의 입술은 두껍지도, 얇지도 않다. 단지 붉은데, 그 붉음이 마치 자기도 모르게 흘린 피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녀가 화장실에서 립스틱을 지울 때마다, 수건에 묻어나온 그 붉은색이 내가 아닌 다른 남자의 것까지 닦아낸 건 아닐까,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한다.
마지막 6mm
오늘도 나는 지수의 입술을 6mm만 더 가까이 당겼다. 그것은 실제 거리가 아니라, 내가 상상하는 키스의 잔여량이다. 어젯밤 꿈에서 나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무는 것까지 허락받았다. 하지만 이내 깨어버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그녀의 입술이라 착각할 뻔했다.
언제쯤이면, 이 6mm를 채우는 게 아니라 비워내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이대로 두는 게 나을까, 그녀의 숨을 훔치지 않고서도.
지수는 지금쯤 퇴근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와 술자리일지도. 그녀가 술을 마시면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서, 그래서 더욱 키스를 갈망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입술을 아는 건, 그녀가 입을 벌릴 때마다 나오는 숨결의 온도뿐이다. 36.5도. 그리고 점점 뜨거워져만 가는 나의 손끝.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그녀의 입술이 당신의 범죄 현장처럼 느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