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10년차 남편이 내 몸을 포기한 까닭, 그리고 다시 타오르는 순간의 공포

결혼 10년차, 남편의 무관심에 지친 아내. 그가 갑자기 불꽃처럼 돌아왔을 때, 그 뒤에 숨겨진 권력과 욕망의 민낯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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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베개 위에 떨어진 한 올 머리카락

“오늘도 안 해?”

준영은 TV 리모컨만 쳐다봤다. 검은 화면이 우리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나는 새벽 두 시 반까지 그의 눈치를 봤다. 한 시간 전부터 속옷 안쪽에 꾹꾹 눌러 넣은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안다.

아직 젊은데, 아직 살아 있는데.


동상처럼 식어버린 침대

결혼 전, 준영은 내 손등 하나에도 숨이 턱 막혀 했다. 지하철에서 손끝이 스칠 때마다 그는 귀 끝이 붉어졌다. 지금은? 내가 맨살로 그의 허리를 스쳐도, 그는 유리창 너머 야경만 바라본다. 체온이 식는 것은 순식간이다. 먼저 식은 것은 몸인가, 애정인가.

사랑은 언제부터 나를 집 안 가장 춥고 먼 구석으로 밀어낸 걸까.

미라가 된 아내와 관음증적 남편

‘나를 안 보는 대신, 나를 보는 다른 이가 생겼을지도.’

나는 매일 밤 이 망상에 시달렸다. 준영의 시선이 TV 광고 속 여자 연예인에게 머물 때마다, 나는 뱃살을 움켜쥐었다. 그가 입는 잠옷은 항상 넉넉했다. 내가 입는 잠옷은 점점 짧아지고, 끈은 얇아졌다. 그래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우리의 침대는 이제 동굴이었다. 각자의 동굴. 그는 그의 구석에서 유튜브을 봤고, 나는 나의 구석에서 핸드폰 화면 속 가상의 남자들의 눈빛을 견뎠다. 난 아직 누군가의 욕망이 될 수 있다고.


경고음처럼 울린 3월 14일

그날 밤, 준영은 새벽 두 시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은 척했다. 그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스쳤다. 미미한 접촉이었다. 하지만 느껴졌다. 차가운 욕망. 뇌가 아닌, 하반신에서 솟아오른 그 욕망을.

“자는 거야?”

준영의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나는 몸을 돌렸다. 그의 눈빛이 어두웠다. 10년 만에 처음 보는, 낯선 눈빛이었다. 그의 손이 내 가슴 위로 올라왔다. 가슴살이 두려움으로 굳었다.

‘왜 이제야? 왜 내가 포기할 때쯤?’

그날 밤, 우리는 몸을 섞었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그의 손길이 내 몸을 움직이는 동안, 나는 10년 전 우리의 첫 키스를 떠올렸다. 뜨거웠던 그때의 입술이 지금은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내 몸은 그를 받아들였지만, 내 영혼은 문을 닫았다.


다른 부부의, 같은 전략

나는 지인 혜진의 얘기를 들었다. 그녀도 9년차. 남편 민석 역시 “스트레스”를 이유로 2년째 그녀의 몸을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석은 갑자기 혜진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이유는 단 하나. 민석의 팀에 새로 들어온 여직원이 혜진과 착각할 정도로 닮았다고 한다.

혜진은 말했다.

“그가 날 원하는 건 맞아. 하지만 그건 나라기보단, 그 여자의 흔적을 내게 투영하는 거야.”

우리는 남편들의 욕망 투영장이 되었을 뿐. 그들은 우리를 통해 다른 누군가를 탐한다. 그리고 그것을 ‘재점화’라고 부른다.


권력의 부메랑

왜 남편은 아내를 포기할까. 그리고 왜 갑자기 다시 태울까.

심리학자 에스더 페렐은 말한다. “장기 관계에서 욕망은 권력 놀이와 분리될 수 없다.” 그렇다. 남편이 아내의 몸을 외면하는 순간, 그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 거절할 수 있다. 내 욕망은 네게 달려 있지 않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권력이 흔들린다. 아내가 돌아선다. 아내가 더 이상 구애하지 않는다. 아내가 스마트폰 속 가상의 남자들에게 웃는다. 그때 남편은 겁난다.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그녀가 넘어가면?’

그 공포가 다시 불을 지핀다. 하지만 그 불은 이미 상처 난 몸 위에 떨어지는 불꽃이다. 아내는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는다. 그저 타버릴 뿐.


너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니

준영은 요즘 다시 나에게 다가온다. 화장실에서 샤워 후 몸을 닦는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이젠 문을 닫는다. 한때 그의 눈빛 한 줌이라도 얻으려 애쓰던 나는, 이제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나를 보는가, 아니면 내가 아닌 여자를 보는가.’

나는 아직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문고리를 꽉 잡은 채,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를 다시 찾는 중이다.

당신의 몸은 아직도 누군가의 욕망이 되는가, 아니면 이미 사막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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