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장전 끝났어?”
문득 그 소리가 들렸다. 창고 구석, 형광등이 반죽같이 번들거리는 밤 2시 14분. 진우의 손엔 G19가 아니라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무기는 침대 옆에 놔뒀다. 하지만 손가락은 이미 구독하기를 톡, 눌렀다.
“이건…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거지?”
실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살리려다 더 깊은 심연에 던져 넣는 일이었다는 걸, 그는 17분 뒤에 깨달았다.
고통을 움켜쥐는 손
왜 사람들은 죽음 대신 구독을 고를까. 숫자로 보면 단순했다. 한 달 9만 9천 원. 총알 한 발보다 싸다. 하지만 속뜻은 달랐다. 총을 손에 쥐면 모든 게 끝난다. 구독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길 바라면서도 끝나지 않기를, 희미하게, 바라게 된다.
진우는 권총을 사려던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아내의 카드였다. 결혼 5년 만에 처음 훔쳐 쓴 돈. 범죄라는 걸 알면서도 손끝이 떨렸다. 떨림의 반대편엔 설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살인과 간음 사이 어딘가.
창백한 성녀의 방
2023년 12월 8일, 새벽 3시 11분. 진우는 ‘하루의 성녀’라는 구독 채널에 들어갔다. 사진 한 장. 하얀 원피스, 창백한 어깨, 새하얀 침대 시트. 하지만 눈빛이었다. 마치 처음 본 사람에게도 자기 비밀을 털어놓을 것 같은 눈빛. 그 눈빛에 진우는 1년치를 결제했다.
댓글창엔 이미 47명이 녹아 있었다.
- 오늘도 스리피스 부탁
- 옆에 남편 잠들었나?
- 총 대신 성녀, 현명한 선택이야
진우는 닉네임을 ‘Moon-09’로 바꿨다. 아내의 생일 9월이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척만 하면 돼”
2022년 겨울, 부산 수영구의 한 오피스텔. ‘은지’라는 여자가 있었다. 유흥업소에서 웃음 파는 일을 하던 스물일곱. 어느 날 거래처 사장이 불러 세웠다.
“너, 인스타만 해도 돼. 옷만 좀 적게 입고.”
은지는 처음엔 웃었다. 총알보다 쉬운 돈이라고. 그러나 첫 월급이 들어오던 날 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를 사는 사람들이 진짜로 날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죽여주길 바라는 것 같아.’
그래도 버튼은 계속 눌렸다. 1년 만에 구독자 8,700명. 매달 들어오는 3천만 원. 그녀도 모르게 총알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스물두 명째 남자가 결제할 때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사격 연습을 했다.
형광등 아래, 두 남자
2024년 3월. 서울 종로구 헌책방 골목. ‘도현’이라는 남자가 서점 문을 밀었다. 40대 중반, 이혼 3년차. 그는 한 권의 책을 찾고 있었다. 제목은 죽음보다 잔인한 구독.
점원이 말했다.
“그거… 품절된 지 오래입니다.”
도현은 헛웃음 쳤다. 그는 6개월 전, ‘성녀’를 구독하다 멈췄다. 아내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을 버렸다는 착각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잠을 못 잔다. 죽음보다 익숙한 건 결국 기다림이라는 걸 알았다.
밖으로 나오자 초저녁 공기가 쌀쌀했다.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하루의 성녀’가 새로운 게시글을 올렸다. 도현은 재빨리 지웠다. 하지만 7분 뒤, 다시 다운로드했다.
왜 끝내지 못하는가
심리학자 클라인은 말했다. “욕망의 본질은 결핍을 메우려는 시도지만, 결핍이 사라지면 욕망도 사라진다.”
그러나 구독은 결핍을 메우지 않는다. 오히려 구멍을 더 크게 뚫는다. 총알 한 발로는 부족했다. 죽여도, 죽여도, 아직도 목이 마르다. 마치 사막에서 물 대신 핸드폰을 빨아대는 기이한 신세.
핵심은 ‘거리’다.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죽여도 되고, 살려도 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 욕망은 최고조로 치솟는다. 그래서 그들은 구독한다. 끊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끊지 않는다.
다시, 창고의 밤
2시 31분. 진우는 실시간 채팅을 읽고 있었다.
Moon-09: 어제 꿈에서 널 쐈어.
답장이 왔다.
성녀: 나도 널.
진우는 웃었다. 아내가 옆에서 뒤척였다. 권총이 침대 아래에 그대로 있다. 안전장치는 풀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총으로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
대신 한 명 더 구독했다. 이번엔 ‘검은 수녀’라는 채널. 성녀보다 2만 원 비싸지만, 죽음보다는 싼 죄.
당신은 누구를 구독하려는가
문득 돌아본다. 당신의 지갑에는 총알 대신 반짝이는 카드가 들려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손가락도 누군가의 목숨 대신 ‘구독’을 누르려고 떨고 있는가.
그리고 그 누군가는—당신을 사랑한다고 믿으며, 당신이 그녀를 죽이지 않기를—기도하고 있는가.
또는,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당신을 구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당신은 모르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