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아이들이 잠든 뒤, 우리는 낯선 사람처럼 옷을 벗는다

아이들 앞에선 완벽한 부부, 침실 문 닫히면 낯선 사람. 서로의 차가운 살결을 마주하며 ‘우리는 이미 끝났다’는 침묵을 견디는 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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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잠든 뒤, 우리는 낯선 사람처럼 옷을 벗는다

휴우개가 끝난, 그 다음 숨소리

"엄마, 아빠, 나 잘 잤지?"
아이가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문을 밀어 열었다. 지수는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어젯밤 이 눈앞의 꼬마에게 키스를 퍼부으며 사랑한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그러나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지수의 손이 내 팔끝을 스쳤을 때 나는 부르르 떨렸다. 차가운 살결. 냉장고 문 손잡이처럼 익숙해진 차가움이었다.


그가 사라진 밤

왜 아직도 같은 침대에 누워야 하지?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죽일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이다. 한때는 서로의 냄새에 취해 잠들었다. 지금은 향수를 뿌려도 코끝이 맴돌 뿐이다.

"오늘도?"
"피곤해."
더 이상 속삭임은 없다. 두음절이면 대화가 끝난다.

아이들 앞에선 연기가 완벽했다. 아침엔 와플을 뒤집으며 서로의 머리카락에서 반죽을 떼어 주고, 학교 문 앞에선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혼자 남은 순간, 우리는 동시에 손을 떼었다. 기름종이처럼 끈적였던 우리의 손이 별안간 스치는 공기만 남겼다.


욕망의 해부

사랑이 아니라, 공범이다.
아이들 앞에서 연기하는 건 이제 두 사람의 **성(性)**이 아니라 공모다. 연기가 멈추면 서로의 약점을 들켜 버릴까 봐 두려운 거다. 누가 먼저 진짜 얼굴을 드러낼까. 누가 먼저 우리는 이미 끝났어라고 입 밖에 낼까.

그래서 침실은 무기력해진다. 핑계는 항상 ‘피곤함’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피곤함은 욕망의 사막 위를 덮은 모래 같은 것. 한 입 먹으면 입안 가득 씁쓸한 자각이 남는다.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만 계속 사랑한다. 그게 가장 잔혹한 착각이다.


실제 같은 이야기 1: 은지와 성훈

은지는 다섯 살, 여덟 살 두 아이를 둔 엄마다.

밤 9시 30분, 거실 조명이 꺼지자 성훈이 노트북을 덮었다. 그는 새벽 두 시까지 일해야 하는 밤이었다.

"오늘도 늦게?"
은지가 속삭였다.
"프레젠테이션 내일이야."
그 말 한마디로 대화는 끝났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불빛만 번쩍였다. 서로의 SNS를 스크롤하며, 옛날 사진을 몰래 확대해서 본다. 결혼식 사진에서 자신들은 얼마나 뜨거웠는지. 한 칸 떨어져 누운 남편의 숨결은 아예 느껴지지 않는다. 은지는 몰래 인스타그램에 ‘#침실남남’이라는 글을 써놓고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물이 나올까 봐.


실제 같은 이야기 2: 희서와 정민

정민은 아이들이 잠든 뒤마다 거실로 나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코골이가 심해서."
아이들 앞에선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희서는 알고 있다. 잠든 정민의 코 골이는 아주 작은 소음일 뿐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의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책상에서 야근하고, 아이들과 장난치며, 저녁을 설거지하면서도 냄새는 없다. 땀 냄새, 성적인 냄새, 어떤 냄새도 없다. 그래서 희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지만 코끝이 텅 빈다. 아이들이 잠든 뒤, 정민은 침대 대신 소파를 선택한다. 그리고 희서는 혼자 이불을 끌어올려 가슴 한가운데를 꼭 부여잡는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금기는 늘 끌려온다. 연인이 아닌 척 살아가는 일. 그래서 침실은 늘 서늘하다. 아이들 앞에선 연기, 침실에선 실패한 연기. 실패한 연기가 지속되면 사람은 무표정이 된다. 무표정 속에서 숨어 있는 ‘끝났다’라는 말이 가장 무섭다.

또 한편으론 안도가 있다. 연기를 멈출 수 있는 곳이 하나 있다는 사실. 하지만 그 안도는 성적 무기력으로 돌아온다. 욕망은 죽지 않는다. 다만 숨을 죽일 뿐이다. 숨 죽은 욕망은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을 낳는다. 아이들 앞에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침실에선 서로의 손길을 거부하는 죄책감 말이다.


눈을 뜨면 내가 먼저 말을 걸까

오늘도 아이들이 잠든 뒤, 우리는 조용히 문을 닫을 것이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각자의 스마트폰을 켤 것이다. 한 칸 떨어진 온도, 한 칸 떨어진 숨결.

그런데 잠깐, 당신은 잠들기 전에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그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면 나는 잡을까, 아니면 모른 척할까?
그 질문 하나가 오늘 밤을 지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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