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은커녕 애초에 정액이 나올 수조차 없길 바란다" 혜진은 이혼장 앞에서 속삭였다. 두 손에 든 건 꽃다발이 아니었다. 투명한 주사기 안에 떨리는 보라색 액체. 그녀의 전 남편 민수는 지금, 서류를 받으러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첫 번째 서약이었던 약속
결혼식 때 뿌렸던 건 백합이었다. 이혼식의 백합은 독으로 바뀌었다. 혜진은 유리병을 흔들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게 정말 끝인가. 민수가 한때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었다. "우리 둘이면 충분해." 그 말이 언제부터 거짓이 되었을까. 혹은 처음부터였을까.
마지막으로 들어간 바
민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사인을 했다. 종이 위에 서명하는 손이 떨렸다. 그 손을 잡았던 지난날이 일렁였다. 혜진은 떠올렸다. 민수가 처음으로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다 말던 밤. 그때부터였다. 민수의 유전자가 더는 이 땅에 남지 않기를 바라기 시작한 건.
의사는 말했다. "임신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하셨나요." 그 임신을 누구와 하려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혜진은 알았다. 민수는 아이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과는 아니라는 걸.
축복이 아닌 저주
혜진의 사례는 유일하지 않았다. 지난달, 부산의 수진이라는 여성은 이혼식 날, 전 남편의 소주잔에 무언가를 타 넣었다. "맛이 이상하다"고 한 남편에게 그녀는 말했다. "이별의 맛이 그런 거야."
수진은 나중에 털어놓았다. "그게 정관수술 약이라는 건 아무도 몰랐어요. 이웃집 수의사가 구해준 거예요." 그녀는 피식 웃었다. "이제 그는 아무에게도 아이를 남길 수 없겠죠."
왜 우리는 죽음보다 더한 걸 원하는가
심리학자 김현정 박사는 말한다. "이혼은 단순한 관계의 끝이 아니라, 유전학적 경쟁의 종언이에요. 상대의 유전자를 완전히 지우고 싶은 충동은 생물학적 본능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상대의 생식 능력을 막고 싶어질까. 그건 사랑했던 만큼 증오도 커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가 남길 아이가 나와 닮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서일까.
그의 정자는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민수는 아직도 모른다. 자신이 서명한 그 종이가 단순한 이혼장이 아니었다는 걸. 그날 저녁, 혜진은 병원에서 받은 문자를 확인했다. "시술 완료. 더 이상 정자는 생성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휴대폰을 껐다. 창밖으로 떨어지는 눈발이 보였다. 이건 복수가 아니라, 지움이다. 민수라는 사람의 미래를 완전히 지우고 싶은 마음. 그게 사랑의 끝인지, 혹은 시작인지.
만약 당신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당신은 그의 유전자마저 지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