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미안하다고는 하잖아."
밤새 뒤척이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화장을 하고 있었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죽은 듯이 놓인 휴대폰. 화면에는 새벽 3시 42분에 보낸 그 말이 떠 있었다.
이제 그만 싸우자. 미안해.
한 달 전에도 똑같은 말이었다. 그때도, 그 전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우리 사이를 메우는 거름이 아니라, 천천히 썩는 독이 되어 있었다.
밤에 피는 꽃
왜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해?
그녀가 화장실에 있을 때 나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었다. 광명이 불 꺼진 창에 비치면서, 내 얼굴이 창문 위에 떠올랐다. 눈 아래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미안해가 사실은 무슨 뜻인지, 나도 알고 있다. 그건 '나는 네가 싫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진짜 사과로 받아들이는 척 한다. 미안하다는 말 하나면, 다시 침대에 누워 서로의 몸을 찾는다. 죄책감의 섹스는 달콤할 때가 많다.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마저도, 뜨거운 피부로 태워버릴 수 있으니까.
첫 번째 거짓말
"정우야, 미안. 오늘 회식이 있어서..."
나는 사무실에서 나온 지 30분도 되지 않아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날씨는 쌀쌀했고, 손에 든 와인은 얼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몰랐다. 그녀가 진짜로 회식에 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회식이라고 핑계를 댔다. 사실은 대학 동창들과 술을 마시러 가는 길이었다.
밤새 술을 마셨다.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눈이 빨갰다. 울었을까.
어디 갔었냐고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녀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말했다.
나도 미안해. 내가 먼저 그랬잖아.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눈을 감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우리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의 몸은 차가웠다. 내가 만지면 떨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서로를 두려워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거짓말
"정민아, 미안해. 나 오늘 좀 이상해."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그녀의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침대 위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한 달 전부터 매주 수요일 밤에 '친구와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처음엔 믿었다. 그녀에게도 나 말고 친구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지난주, 그녀가 휴대폰을 놓고 간 순간이 있었다.
화면이 켜졌다. 수신된 메시지가 있었다. 발신자: '상현'.
오늘도 그 남자와 만나는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다시 덮을 수 있는 것처럼.
왜 우리는 이 독을 마시는가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죄책감 중독'이라고 부른다. 미안하다는 말이 주는 일시적인 해방감.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잘못됐다'는 인정으로 모든 걸 덮을 수 있다고 믿는 착각.
하지만 이건 마약과 같다. 처음엔 가벼운 죄책감을 없애준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더 강한 거짓말과 더 깊은 배신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엔, 미안하다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정말 미안한 게 아니라, 그냥 상대방을 조용히 만들고 싶을 때 우리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 말은 이제 사과가 아니라, 봉인의 주문이 되었다. 말하면 다시 봉인된다. 우리의 진짜 마음, 서로를 향한 불신, 이별에 대한 욕망. 모든 걸 덮어버린다.
마지막 진실
"정우야, 미안해."
오늘도 그 말이 날아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대 옆 램프를 끄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조용히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이번엔 정말 마지막일까?
아니다. 우리는 이미 끝났다. 미안하다는 말만이 우리를 아직 붙들고 있는 것뿐이다. 그 말은 이제 '사랑해'도 아니고 '미안해'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더 이상 서로를 원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뿐이다.
당신도 지금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말이 진짜 사과인지, 아니면 그저 상대를 조용히 묻어버리는 주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