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배가 떠난 뒤, 에어컨 소음만 남은 호텔방.
- 침대시트 위 흰자국이 마치 범죄 현장처럼 굳어 있다.
나는 손에 든 수건으로 닦다가 멈췄다. 냄새가 코끝을 간질었다. 섞여 있는 냄새, 피부, 침, 그리고 눈 깜빡임 사이에 흘러나온 한숨.
지우려다가 오히려 천천히 흡수했다. 손끝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
잔여물 위에서 피어오르는 것
뒤처리는 단순한 대청소가 아니었다. 파편을 모으는 일, 그러나 동시에 파편을 다시 조각조각 품는 일.
-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
- 침대 헤드에 남은 입술 자국.
- 시계 아래로 굴러간 콘돔 포장지.
하나하나 집어넣을 때마다 가슴이 울렁였다. 이게 다 끝났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직 여기에 있다는 생각도.
혼자 남겨진 서랍
사례 1. 지우려던 흔적을 모으는 여자
"지수, 31세, 광고회사 AE"
지수는 2년째 비밀 연애 중이다. 상대는 유부남. 만나고 나면 그녀는 항상 먼저 나간다. 남자는 가족과의 문자를 확인하느라 손가락이 분주하다.
- 그녀가 떠난 뒤 남자가 한 일: 시계 맞추기, 카톡 확인, 머리 다듬기.
- 그녀가 떠난 뒤 그녀가 한 일: 갈색 봉투에 피어 있는 냄새를 담는 일.
봉투 안: 시트 한 조각, 남자가 사용했던 물티슈, 볼펜심 하나.
6개월이 지났다. 봉투는 캐리어 속 깊은 곳으로 옮겨졌다. 파스텔빛 캐리어 안에 검은 비닐봉투가 여럿 들어 있다. 그녀는 이것들을 ‘사건’이라 부른다.
"사건을 열면 그날의 숨결이 다시 살아나. 지금도 몸이 달아오르지."
사례 2. 청소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는 남자
"현수, 28세, 요식업 사업가"
현수는 바람을 피우지만 집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한 가지 의식을 치른다. 차 안에서 휴지로 닦고, 향수를 뿌리고, 속옷을 교체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실수했다. 교체한 속옷을 집에 두고 온 것. 아내의 카톡이 왔다.
“오늘 네가 갈아놓은 거 내가 세탁했어. 땀이 많이 났나 봐.”
그날 이후 현수는 뒤처리를 즐긴다. 아내가 지운 뒤에 다시 찾아내는 게임. 냄새를 맡아보고, 발견하지 못한 그늘을 확인한다.
금기의 냄새가 왜 이토록 달콤한가
엘리노어 기분슨의 욕망 이론은 이렇게 말한다. 욕망은 결핍의 산물이 아니라 잔여의 산물이라고. 남겨진 흔적이 우리를 다시 불러 세운다.
- 뒤처리의 순간은 모두가 사라진 고요함.
-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나만이 이 공간을 지배한다는 착각을 한다.
그 착각이 또 다른 욕망을 낳는다. 나만 보았던 것을 계속해서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
마지막 문장
네가 혼자 남겨진 방에서 냄새를 맡으며 손가락을 움직일 때, 정말로 지우려는 게 있던가, 아니면 지우는 척하면서 또 다른 욕망의 씨앗을 심고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