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62세 남편이 끝내지 못한 건, 모델들 때문이었나, 아니면 내가?

침대 위에서 그가 떨던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모델 포트폴리오 속 22세 아가씨들보다 날카로운 건, 38년차 부인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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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 아빠, 이거 보라색으로 갈아줄까?”

클릭. 다시 클릭. 노트북 화면은 더 이상 숨길 곳이 없었다. 62세 현수 씨의 손은 아직도 터치패드에 떨려 있었고, 그의 반쪽은 11년째 불면증에 허덕이는 59세 아내, 선영 씨의 거친 숨소리를 뒤로하고 있었다.

‘22살이라니… 나보다 손가락 마디 수만큼 어린 애들인데.’


야경이 지나치게 선명한 밤

아파트 24층 거실. 유리창에 비친 부부의 얼굴은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현수 씨는 아내의 시선이 자신의 뒷덜미를 찌를까 두려웠고, 선영 씨는 남편의 시선이 마치 채워지지 않은 칸을 더듬는 듯 보여 화가 났다.

“이번엔 또 누구야.”
“그냥… 작품 참고용이야.”
“작품이면 왜 화장실 가는 걸 숨겨?”

대답 대신 현수 씨가 끄는 모니터 속, 화려한 치아교정 스마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내의 검지가 남편의 복부를 가볍게 찔렀다. 38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누가 누구를 먼저 불태웠는지 아무도 모른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로제 스튜디오’라는 럭셔리 샵에서 6개월째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던 현수 씨는, 손님의 열 다섯 번째 스카프를 조정하다가 문득 자신의 눈이 아내가 아닌 다른 곳을 먼저 찾는 걸 발견했다. 아니, 눈이 아니라 카메라가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1/125의 찰나, 셔터 속 모델은 사랑에 빠진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찍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찍는 거야.’

선영 씨는 그날 저녁 남편의 가방에서 반짝이는 USB 하나를 꺼냈다. 폴더명 ‘R_2208’. 처음 열어본 1,247장의 사진 속, 남편이 제일 먼저 포착한 건 모델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다리 끝에 새겨진 작은 흉터였다.

“이거… 다 너 찍은 거야?”
“업무야.”
“그럼 업무라면 왜 걔들 얼굴에 초점 안 맞춰?”

숨겨진 동공의 미학

작은 흉터를 들여다보던 선영 씨는 문득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봤다. 네 번의 난산, 두 번의 유산, 그리고 남편이 결코 찍지 않은 그녀만의 흉터. 그녀는 남편이 모델의 흉터를 찍은 순간, 사실은 자신이 아닌 여자들의 흉터를 통해 자신을 찍으려 했던 걸 깨달았다.


두 번째 사례: 제주도 펜션, 3월 17일 새벽 2시 47분

김포공항에서 내려 2시간 반을 달려 찾아온 서귀포시 모슬포. 신혼부부가 아니라 60대 부부가 떨어진 투숙객은 현수·선영 씨 단둘이었다. 현수 씨는 새벽 바다를 배경으로 아내를 찍으려 했지만, 렌즈는 여전히 수평선 위로 미끄러졌다.

“이제 안 찍혀.”
“뭐가?”
“나라는 사람이, 렌즈 속에 안 찍혀.”

선영 씨는 조용히 카메라를 내려놓고 남편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38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남편의 욕망이 자기 안에 있는 게 아님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욕망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다시 커졌다가를 반복하는 파도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춤출 때마다 누군가는 관음한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디지털 흉터’라 부른다. 우리는 실제 상처 대신 화면 속 흉터를 훔쳐보고, 그 훔친 순간 자신의 상처를 되감기한다. 남편의 카메라는 아내의 눈이 되었고, 아내의 눈은 남편의 렌즈가 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비추던 거울이 되어, 서로를 비추지 못했다.


끝내지 못한 건 너였나, 나였나

밤새 모니터를 끈 채 거실에 앉아 있던 현수 씨에게 선영 씨가 말했다.

“이젠 나도 사진 찍을래.”
“뭘?”
“너의 흉터.”

그녀는 DSLR을 들고 남편의 왼쪽 무릎을 향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의 무릎은 삐걱 소리를 냈다. 셔터가 눌리는 순간, 현수 씨는 아내가 그토록 찍고 싶었던 것이 자신의 흉터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직도 물음표만이 침대 위에 남아 있다

3월 18일 새벽,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모델의 흉터, 남편의 시선, 아내의 렌즈가 아직도 덜렁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욕망을 끝내지 못했나, 아니면 끝내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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