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한 입에서 흘러나온 첫 단어
채은의 목덜미에 입맞추던 순간, 그녀는 격한 숨결을 흘리며 속삭였다.
"너 정말… 완벽하다." 순간, 혀끝에 남은 그녀의 땀맛이 갑자기 썼다. ‘완벽’은 나를 향한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준 상황에 대한 평가였다. 나라는 퍼즐 조각이 아니라, 조각이 딱 맞춰진 퍼즐판 자체. 내 몸은 그녀의 욕망을 닮은 거울일 뿐, 결코 나 자신은 아니었다.
욕망의 거울
우린 모두 총알받이를 원한다. 자신의 상처를 대신 받아 줄, 누군가의 얼굴 위에 씌워질 가면. 내가 채은의 눈에 비친 모습은, 그녀가 상상한 남자의 완성본이었다. 키 189cm, 헬스 5년, 목소리는 낮고 촉촉하게 울렸다. 단 한 치도 어긋난 적 없는, 단 한 치도 나인 적 없는 육체. 그래도 괜찮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날 원하는 방식이라면. 그러나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무언가에 긁혔다. 나는 더 이상 숨 쉬는 존재가 아니라, 숨을 내쉬게 하는 장치였다.
첫 번째 사례 – 혜진, 그녀가 원한 건 나의 냄새였다
혜진은 나를 만난 지 사흘 만에 자취방으로 데려갔다. 침대 머리맡에 노란색, 분홍색, 하늘색 포스트잇이 수십 장. 그녀는 하나씩 떼어 가며 나의 목덜미, 손목, 복근에 붙였다.
"여기서 땀나면 안 돼. 향수 냄새 섞이면 죄송해서." 그녀가 사전에 구매해 둔 향수는 이미 욕조 위에서 증발 중이었다. 샤워하고 나오자마자 내 몸에 뿌려주며 중얼거렸다. "남자친구가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이 향만 맡게 해 달라고." 나는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다. 3년 차 연애의 권태를 채울, 살아 있는 향수 샘플이었다. 키스할 때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다른 이름을 불렀다. 나는 대답 없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니, 손끝의 감촉까지 빼앗긴 나는, 그저 움직이는 손가락에 불과했다.
두 번째 사례 – 민재, 그가 필요한 건 분노의 방향이었다
민재는 동아리 선배였다. 술자리에서 그는 늘 화끈하게 웃었지만, 화장실에 혼자 갇혀 있을 때의 눈빛은 달랐다. 하루는 그가 나를 뒷골목 술집으로 불렀다.
"너, 그 사람 때문에 지옥 본 거 알지?" 그가 말한 ‘그 사람’은 2년 전 민재를 차버린 전 여자친구였다. 나는 그녀와 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담배 한 대 피워 물며 민재가 말했다. "그때 들었던 말 그대로 해 줘. 똑같이." 나는 그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미안해, 너무 질렸어." "사실 너 보면 숨 막혀." 민재는 고개를 숙였다. 등이 떨렸다. 울고 있었다. 나는 그의 머리 위로 술병을 들어 쏟았다. 시원한 맥주가 그의 머리카락을 적셨다. 그 냄새가 문득 내 몸을 관통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쏟아지는 맥주에 불과했다.
왜 우리는 희생을 기쁨으로 느끼는가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희생적 수단화라 부른다. 타인의 욕망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포기하는 쾌락. 극단적일수록 도취된다. 나는 나를 지우고 싶었다.
나는 없어, 당신만 있어. 그 말의 뒤집기 – 당신은 나 없이도 완전해. 우리는 모두 연기의 조연이 되고 싶어 한다. 주인공의 빛을 받는, 희미한 실루엣. 그림자가 되면, 최소한 부딪히지 않는다. 부서지지 않는다. 대신 빨려들어간다. 빛의 중심으로. 심지어 그 빛이 우릴 태워도.
나는 더 이상 수단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누군가의 욕망을 채우고 있지 않나요. 오늘 밤에도, 침대 끝에 앉아 상대의 숨소리를 맞추느라 숨을 참고 있지는 않나요. 그럼, 당신은 누구의 채은이자 민재였는가. 그리고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당신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까. 당신의 귓가에 숨결을 댄 채, 당신 대신 들려주고 싶은 이름은 뭘까. 그 이름이 당신의 진짜 이름은 아니겠지. 당신은 누구의 향수병이자, 누구의 맥주잔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