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턱수염 밀어 한마디에, 숨기던 게 드러났다

“턱수염 밀어. 너 입 벌릴 때마다 찌르니까.” 한마디에 무너진 성적 자존심, 그 창피함 뒤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과 집착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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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수염 밀어 한마디에, 숨기던 게 드러났다

“턱수염 밀어. 너 입 벌릴 때마다 찌르니까.”

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도 꺼져 있었고, 창밖은 서늘한 가을밤이었다. 그가 이마를 스치는 내 손을 잡아내려 끌어당기더니, 별일 아닌 듯 던진 말이었다. 턱수염 밀어. 입 벌릴 때마다 찌른다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누군가가 내 등뼈에 얼음 조각을 한 장 대는 듯했다. 단순한 불만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가장 숨기고 싶던 부분을 정확히 찌른 느낌이었다. 턱수염이라는, 내가 아직 남자답지 못하다는 증거. 그리고 입. 그 입 안으로 들어갈 것이 없다는, 나의 가장 민망한 비밀.


뿌리 깊은 욕망, 조잡하게 덮어씌운 피부

턱수염은 그냥 털이 아니었다. 매일 거울에서 검은 윤기 없는 수염을 확인할 때마다, 난 약자라는 낙인을 받는다. 대학원 동기들은 이미 누가 봐도 ‘어른’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나는 여전히 풋내기였다. 그래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한 올 한 올 자라는 털이 내가 아직 아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가 눈치채지 못할 거짓말이었다. 턱수염은 오히려 내 초조함, ‘남자다움’에 대한 허겁지겈던 집착을 드러냈을 뿐.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었던 남자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턱수염은 내가 성적으로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가리는 붕대였고, 그가 그 붕대를 걷어낸 거였다.


민우는 2년간 한 번도 벗지 않았던 양말처럼

민우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조용한 남자였다. 그는 항상 긴 팔을 입고 다녔다. 여름에도. 어느 날, 그의 연인이 농담조로 말했다. “민우야, 팔 좀 봐. 솜털 좀 밀지?” 그 순간 민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중에 민우는 술자리에서 털어놓았다. 어릴 때 아버지가 ‘털 많은 놈이 진짜 남자지’라던 말을 따라, 그는 털이 많이 나지 않는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늘 긴 팔로 가렸다. 솜털이라도 드러내면, ‘진짜 남자’가 아니라 들킬까 두려웠다고.


희수는 젖꼭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머리끝에 숨겼다

희수는 항상 머리를 땋았다. 정갈한 프렌치 브레이드, 한 올도 빠짐없이 잡아당긴 머리매듭. 밤에만 풀어헤치면, 그녀는 이마에 흰 반창고를 붙였다. 사실 그 반창고 아래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젖꼭지를 드러내는 게 두려웠다. 한 번은 전 남자친구가 불쑥 말했다. “너 젖꼭지 색 좀 이상하던데?” 그 이후로, 그녀는 모든 성적 순간마다 상체를 부끄럽게 움츠렸다. 머리끝을 꽉 잡아당겨도, 그 일렁이는 질투와 창피함은 숨길 수 없었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이건 좀 이상하네” 한마디만 들어도, 그 부위를 평생 숨기게 된다. 턱수염, 젖꼭지, 솜털, 혹은 성적 자존심의 조그만 흠집. 중요한 건 그 외모의 결함이 아니라, 그 결함이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성(性)’의 이미지를 부숴버린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늘 자신이 ‘정상’이라는 거울 속에서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거울이 금이 가면, 우리는 그 틈에서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목격한다. 턱수염 한 올의 무게가, 젖꼭지 한 점의 색깔이, 우리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지.


숨기고 싶은 게 있는가? 그건 네가 원하는 게 아니라, 네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턱수염을 밀고 나서, 나는 거울을 봤다. 민망하게 드러난 턱뼈, 아직 풋내기인 내 모습. 하지만 그때야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숨기려는 부분은 사실 우리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부분이었다. 누군가 그것을 찌르면, 우리는 욕망의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턱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은 정말 강한가, 아니면 그렇게 보이고 싶은 약자인가?

지금 네가 가장 숨기고 싶은 부위는 무엇인가? 그건 네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누구가 되고 싶었는지를 말해주는 지도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지목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긴 팔과 땋은 머리로 자신을 감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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