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잔, 그리고 독백
"아니, 엄마는 그냥... 그러시는 거예요?"
유리잔이 미끄러지며 소주가 흰 리넨 위로 번졌다. 시계는 오후 두 시, 민서의 손이 떨렸다. 시어머니 영희 씨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수백 번 들어온 이 자리, 수십 번 참아온 이 순간이었다.
이젠 그만 참으면 안 될까.
민서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목끝에서 올라온 술맛이 피로 맺혔다. 그리고 흘러나왔다.
"당신이 부끄러워야 해."
그 말이 나온 순간, 거실의 공기가 응고됐다. 영희 씨는 처음으로 눈을 크게 떴다. 민서는 그 눈에서 자신이 꺼내지 않은 욕망의 실루엣을 봤다. 두려움, 분노, 그리고 뒤늦은 후회가 섞여 있었다.
숨겨왔던 것
왜 지금까지 참았을까? 그건 단순한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희생양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끔 엄마를 똑같이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더 잘 참는다. 더 많이 웃고, 더 깨끗이 닦고, 더 조용히 삼킨다. 그러면 누군가는 "참 잘 살아왔어"라고 말해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민서도 참았다. 시어머니가 아들의 전 남자친구 사진을 꺼내놓을 때도, "이런 여자는 우리 집 안 맞아"라고 속삭일 때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불안을 눈동자 깊게 묻고.
그러나 잠금장치는 녹슬어 있었다. 그리고 술은 그걸 뽑아냈다.
두 번의 식탁, 두 번의 발가놓임
첫 번째는 지은이었다. 결혼 3주 만에 시어머니 집에 첫 명절. 지은은 장을 11종류나 준비했다. 갈비찜은 새벽 네 시에 시작해 아침 일곱 시에 끝났다. 시어머니는 쌀밥 한 숟갈 뜨더니 말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건 고추장찌개인데
지은은 웃었다. 그리고는 냄비를 들고 선반 위로 올렸다. 두 손으로 뚜껑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저 찬물이 끓는 소리였다.
"엄마도 한 번 끓여보세요. 제가 먹어본 적 없거든요."*
그날 이후 지은은 시어머니와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남편은 그녀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이제는 봐도 되는 거야. 지은은 그걸 느꼈다.
두 번째는 하연이었다. 남편의 임신 7개월 차. 시어머니는 산부인과에서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문 앞에서. 하연은 복대를 풀어보이며 말했다.
저희는 조용히 가족만 있고 싶어요
시어머니는 눈가를 붉혔다. "할머니도 가족 아닌가?" 하연은 고개를 떨궜다.
"아니에요. 가족은 제가 정하는 거예요."
그 말 한마디에 시어머니는 한 달 동안 아들 집에 오지 않았다. 그 한 달 동안 하연은 처음으로 아기 이름을 결정했다. "우리 아기는 우리가 지어요"라고.
우리가 원하는 것
왜 시어머니 앞에서 그렇게 말하고 싶을까?
그건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분리의 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걸 "영원한 욕망의 루프"라 부른다. 우리는 애초에 엄마를 닮고 싶어 하지만, 정작 닮아버리면서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끊임없이 벗어나려 하지만, 벗어나는 순간 또 다시 끌려들어간다.
부끄러움은 이 루프를 끊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다. 상대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나의 욕망을 기어이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영희 씨가 눈을 크게 뜬 건, 민서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당신 아들을 뺏기 싫은 거잖아.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영희 씨의 욕망이었다. 민서는 단지 그걸 꺼내어 한 번 들어보라고 했을 뿐이다.
남은 한 잔의 맛
민서는 남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서는 봤다. 그녀의 눈이 처음으로 내려앉는 걸. 그리고 무언의 말이 전해졌다.
미안하다, 아니지. 인정한다.
민서는 잔을 내려놓았다. 시계는 아직 오후 두 시였지만, 민서는 이미 어젯밤으로 건너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날 밤, 당신은 어떤 말을 삼켰는가
시어머니의 부끄러움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았나?
그리고 그 욕구는 지금 어디에 숨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어두운 말을 꾹 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그 말이 마침내 나올 때, 우리는 처음으로 진짜 나를 만날지도.
그때 당신은 누구에게 "당신이 부끄러워야 해"라고 말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