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비싼 와인 두 잔을 비우고 나자, 지수는 문득 물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했어?
영준이 잠시 눈을 피했다. 레드 와인이 잔끝에 걸려 있었다.
7년 전이야.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 영준은 조용히 덧붙였다.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냉장고 위의 트로피
침대 옆 양면 테이블에는 먼지 쌓인 트로피가 하나 있다. 작은 플라스틱 판에 새겨진 문구는 이렇다.
7년 무섹스 달성
영준은 가끔 그걸 들여다보며 속으로 웃는다. 참았다는 게 자랑스러워야 할 텐데, 왜인지 목뒤가 답답하다. 이건 마치 굶주림을 숙제처럼 해결한 기분이다.
*고통을 참은 것도 능력인가?*
부끄러운 핑계
처음 두 달은 정말 멋졌다. 서로를 위해 ‘참는다’는 단어는 없었다. 그냥 ‘필요 없다’고 여겼다. 아침에 눈 맞추고, 저녁에 요리를 나누며, 서로의 숨소리에 안심했다.
그러다 어느 날, 영준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키스하는 커플을 보았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우리도 저랬었지. 다음날부터 창문 너머 흘러나오는 여자의 신음 소리가 선명해졌다. 벽이 얇아서가 아니라, 귀가 간절해서였다.
영준은 변명을 떠올렸다.
계획 없는 야근에 피곤해서.
시험 기간이라 멘탈이 바닥이라서.
모두 거짓이었다. 그는 그저 “하고 싶은데, 하는 순간 끝날까 봐” 두려웠다.
수진과 민수의 8년
수진은 31살, 민수는 33살. 둘은 8년째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몸을 맞댄 건 대학원 시절 방 한 칸이 전부였던 원룸에서였다.
민수는 TV 리모컨을 돌리며 말했다.
요즘 우리 사이, 솔직히 친구 같지 않아?
수진은 라면 끓이는 손을 멈췄다.
그럼 뭘로 바꾸고 싶어?
대답은 없었다. 대신 민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뚜껑을 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밤이 되자 민수는 문득 물었다.
너도 하고 싶은 거 맞지?
수진은 눈을 피했다.
근데 너무 오래 걸려서… 이제 시작하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해서*
왜 우리는 멈췄을까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가역적 무성애’라 부른다. 욕망이 사라진 게 아니라, 관계 안에서 표현할 언어를 잃어버린 것이다. 첫 키스를 하며 느꼈던 두근거림이 버릇이 되면, 그 감정은 재현될 수 없다.
우리는 금욕을 ‘점수’로 바꿔버렸다. 참았다는 사실이 곧 성실함, 또는 서로에 대한 배려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은 두려움을 포장한 겸손이다.
‘만족 없는 인내’는 사랑의 증거가 아니다.
뜨거운 차가운 날
영준은 지난 겨울, 우연히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읽었다. ‘무섹스 10년 차 부부’라는 제목이 붙은 글은 이렇게 끝났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더 이상 물음이 없다.
영준은 그 문장을 끌어다 메모장에 적었다. 그리고 밑줄을 그었다.
→ 그건 사랑이 아니라, 끝났다는 신호일지도.
남은 질문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정말로 ‘원하지 않아서’ 손을 대지 않은 건가. 아니면 손을 대면 무언가 영원히 깨질까 봐 주저하고 있는 건가.
7년이면 강철도 녹는다. 그럼에도 몸은 아직 뜨겁다. 그 뜨거움을 언제까지 차가운 방에 가둬 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