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출산 7개월, 남편 옆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밤들

아기를 낳았다고 나까지 봉인된 건 아니야. 출산 212일째, 12층 창밖을 바라보며 되뇌는 한 기혼여자의 은밀한 도망욕망과 그릇된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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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뛰어내릴까.”

유모차를 끌고 12층 복도를 걷는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틈, 창밖으로 보이는 차도가 날카롭게 내려다보인다. 아기는 안고 있지 않다. 아기는 집 안, 남편 품에 있다. 그래서 양손이 자유롭다. 한 걸음만, 난간 위로 한 걸음만 올라서면 된다.

그때 스마트워치가 울렸다. ‘육아일기’ 알림이다. “지금은 아기가 우는 시간!” 남편이 보낸 사진이 뜬다. 아기는 울지 않고 있다. 대신 남편은 초점 없이 흐릿하게 웃고 있다. 사진 속 그의 손이 아기 머리를 어루만지는데, 그 손이 내 몸을 마지막으로 만졌을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기를 낳았다고 나까지 봉인된 건 아니야

출산 후 212일째, 나는 아직도 매일 밤 꿈을 꾼다. 항상 같은 꿈이다. 누군가의 손끝이 내 살을 간질이고, 내가 깨어나면 아기가 젖을 물고 있고. 그러고 나면 속옷이 눅눅해져 있다. 젖은 아기 몸이 아니라, 내가 흘린 눈물 때문일 때가 많다.

육아휴직 기간 남편은 “예비역 아빠”라 자부했다. 퇴근 후 아기에게 장난감을 흔들고, 주말에는 젖병 하나를 나눠 든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우리 아이 엄마’라 부르기 시작했다. 예전엔 ‘자기’였다. 지금은 ‘엄마’다. 그 호칭이 내 죄목이다. 엄마는 도망치면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너를 원한다.” 내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말한 거짓. 그날 이후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들은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30대 중반, 인천 부평에서 살다 딸 하나를 낳고 한 달 만에 집을 나선 지영 씨. 그녀는 택시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다시 현관 앞에 섰다. 지영 씨는 나에게 말했다.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제가 아니라 아기가 들어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못 들어갔죠.”

그녀는 결국 밖에 서 있었다. 두 시간. 이웃 수위 아저씨가 걱정스러워하며 다가와 “아이 아빠한테 전화할까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지영 씨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20초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그동안 젖을 못 먹어 울고 있었다. 아기는 엄마가 필요했다. 엄마는 도망치지 못한다.


두 번째 사례: 사진 속 여자

‘맘카펜’에서 본 사진 한 장. “남편이랑 오붓하게”라는 제목의 게시글. 사진 속 여자는 아기를 안고 남편의 뺨에 키스하고 있다. 그녀의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눈물인지, 피로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점은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다름 아닌 시어머니라는 거다. 시어머니가 찍어준 가족 사진. 그녀는 댓글로 달았다. “시어머니가 찍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들여다봤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각도, 남편의 뺨에 닿는 그녀의 입술이 떨리는 정도, 그리고 아기가 찍히지 않은 부분. 아기는 사진 밖이다. 그런데 그녀는 아기를 안고 있다. 아기는 사진 밖에 있지만, 그녀는 이미 그 안에 있다.


왜 우리는 떠나고 싶은 것만으로도 죄인이 되는가

산후우울증은 호기심이 아니라 증거다. 모든 여자가 엄마가 되는 순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소환된다. 그 이름은 욕망의 무덤이다. 아기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가 아니다. 나는 젖꼭지, 젖병, 기저귀, 그리고 남편의 ‘우리 아이 엄마’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마저도 배신이다. 남편은 말한다. “너 없이는 아기가 안 된다.” 그 말은 진짜다. 아기는 엄마가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필요한지, 아기가 나를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단지 엄마라는 기능이 필요한지 모른다.


마지막 질문

지금 이 순간에도 남편 옆에서 잠이 든 당신, 아기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당신, 문득 창문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당신은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당신은 언제 다시 태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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