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47분, 민서는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코끝을 찌른 건 민재라고 믿어온 익숙한 냄새가 아니었다. 달달하고 먹음직한 장미·머스크·솔향의 뒤끝에, 유난히 낯선 꿀을 태운 듯한 쪽향이 묻어 있었다. 민재는 뒤척이며 무의식중에 팔을 민서의 허리에 얹었다. 그 손끝에서도 똑같은 냄새가 흘렀다.
민서는 살짝 목뒤로 손을 뻗어 민재의 셔츠를 집었다. 숨결이 닿는 순간, 그가 어젯밤 샤워는 했는지 안 했는지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젯밤 늦게 들어온 너, 샤워는 했어? 샤워? 그래… 아, 맞다. 헬스장에서 냄새 나길래.
민재는 눈을 비비며 대답했지만, 그 말과 함께 풍기는 향은 분명 화장실 세면대 위에 두고 온 실향수가 아니었다. 민재는 향수 냄새를 싫어한다며 작년에 선물한 실향수를 서랍 깊숙이 묶어뒀었는데.
민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트를 만지자 손끝에 미묘하게 끈적거리는 느낌이 남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일어나 민재의 셔츠를 들었다. 목덜미 안쪽에 붉은 입술 자국이 희미하게 얼룩져 있었다. 아, 이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문득 지난주 민재가 늦게 들어온 날, 같은 향이 화장실 비누 위에 맴돌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단순히 동료 여사원의 향기가 옷에 밸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민서는 셔츠를 가슴에 대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향기가 더 선명해지자, 그녀의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흔들렸다.
민재야, 어젯밤 누구 만났어? 뭐? 그냥 회식이었어. 왜 그래?
민재는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민서는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초췌한 얼굴을 마주했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가 민재의 뺨에 손을 얹었다. 민재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민서야, 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 향, 누가 뿌려준 거야?
민재의 대답은 없었다. 대신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민서는 민재의 턱 끝에 아주 작은 흠집이 하나 있음을 발견했다. 면도를 하다가 긁힌 게 아닌, 누군가의 손톱에 긁힌 흔적처럼 보였다.
민서는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욕조 위에 민재의 티셔츠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티셔츠를 들어 올려 코끝에 대었다. 향기가 더 선명해지자, 민서의 머릿속에는 지난 몇 주간 민재의 행동이 뒤섞였다.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아졌고, 휴대폰을 이상하게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민서는 민재의 휴대폰을 꺼냈다. 잠금 해제는 4년째 바뀌지 않은 그녀의 생일. 그러나 메시지함엔 삭제 흔적만 남아 있었다. 불안은 뒤틀리는 상상력으로 이어졌다. '혹시 나도 모르게 그녀의 향기를 품고 다니는 거야?' 민서는 아침 햇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나도 배신을 준비하고 있는 거야?
민서는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민재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민재의 옆에 앉았다. 민재의 머릿결이 민서의 손끝에 닿았다. 민서는 천천히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민재야, 나도 누군가의 향기를 품고 싶어진다면 어떡하지? …뭐?
민재는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에 민서의 초췌한 얼굴이 비쳤다. 민서는 민재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너랑 나랑 쓰던 향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뿌려준 향기 맡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민서야…
민재는 민서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끝에서도 여전히 그 달콤한 향이 흘렀다. 민서는 그 손을 가만히 놓고 말했다.
사실 나도 모르게 너를 맡고 싶어진 거야. 너의 향기를, 너의 피부를… …
민재는 말없이 민서를 바라봤다. 민서는 민재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민재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속삭였다.
너도 남의 향기를 맡고 싶어? …그래.
민재는 눈을 감았다. 민서는 그의 품에 안긴 채 그 향기를 더 깊이 들이마셨다. 그 향기는 배신의 냄새였지만, 동시에 그들 사이에 남은 마지막 따뜻함이었다. 민서는 민재의 귓속에 속삭였다.
그럼, 나도 너를 떠나고 싶어져.
침대 위에 남은 배신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민서와 민재는 서로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누구의 향기를 품고 싶어 하는가? 아니, 누가 나를 가장 깊은 곳까지 맡게 하고 싶은가? 어쩌면 그 향기는 단지 민재의 것이 아니라, 민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거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