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빨간 페인트에 적힌 ‘유니콘은 위헙’ 그래도 손잡이를 돌렸지

경고가 또 다른 유혹이 되는 순간, 당신은 문 앞에 선다. 뒤틀린 사랑과 아찔한 추락의 기록.

금기유니콘욕망파국
빨간 페인트에 적힌 ‘유니콘은 위헙’ 그래도 손잡이를 돌렸지

“문 앞에 놓인 쪽지, 빨간 페인트 뚜렷이: 유니콘은 위헙

주혜는 쪽지를 찢어 버릴 수도 있었다. 대신 그녀는 손등으로 묻은 붉은 물감을 핥았다. 짜릿한 쇠맛이 혀끝을 찔렀다. 그 맛이 좋았다. 아니, 그 맛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

열어도 될까?

문은 아파트 지하 살얼음 낀 계단 끝, 비상구 뒤편에 숨겨져 있었다. 강철 손잡이엔 솜털처럼 가는 눈꽃이 피어 있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눈꽃이 사르륵 녹으며 손가락을 삼키려 든다. 주혜는 문이 아니라 자기 손을 잡아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고삐 풀린 짐승 같은 호기심

우리는 왜 위험을 알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못할까. ‘당신도 알잖아, 이건 그냥 관심이 아니야.’

유니콘. 진짜 생물학적 유니콘은 없다. 하지만 ‘절대로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만지면 깨질 것 같은’ 대상은 곳곳에 도사린다. 유부남, 선생, 상사, 친구의 약혼녀—공식 명칭은 달라도 온몸에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문 뒤에는 네가 견딜 수 없는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문은 거절당할 운명거절할 수 없는 운명 중간에 서 있다. 그 절벽 사이를 우리는 ‘욕망’이라 부른다.


일주일 뒤, 주혜는 정장을 벗어놓고 있었다

“바지부터 벗겨도 돼?”

상대는 말이 없었다. 대신 벽에 걸린 재킷 옆으로 다가가 플라스틱 태그를 뜯었다. KIM JUNHO, MD. 병원 명찰이다. 그가 주혜의 앞치마를 풀어헤칠 때, 명찰 사진 속 눈빛이 여전히 선량했다.

주혜는 그를 ‘유니콘’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피부과 전문의였다. 8년. 첫 진료 때부터 그녀의 몸에 가장 민감한 지점을 꿰뚫고 있었다. 문진표에 쓴 ‘물집 자국’ ‘가려운 곳’ 같은 단어를 그가 읽으며 연필을 물고 있던 광경이 8년째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동안 주혜는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다. 그는 첫 아이를 봤다. 두 사람은 항상 ‘진료실’이라는 공간 안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료 끝나고 건네준 종이 봉투 안에 검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지하 비상구, 오후 9시. 단돈 5천만 원으로도 못 사는 약을 준비했습니다.

그 약은 결코 약이 아니었다.


두 번째 유니콘, 도현은 키스만 했다

도현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 기관의 ‘윤리 담당’이었다. 말 그대로 유리창 닦는 하루였다. 횡령 사건, 성범죄, 조직 내 괴롭힘—도현은 하루 종일 사람들의 더러운 부분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그러다 퇴근길, 지하철 3호선 광화문역.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안내멘트:

“…승객 여러분, 이 열차는 종착역을 지나 200미터 지점에서 멈춥니다. 하차 바랍니다.”

도현은 하차하지 않았다.

그는 유리창 너머 희미한 불빛 속에 서 있는 여자를 봤다. 유리 너머의 그녀는 초승달 모양의 흉터 하나가 있었다. 도현은 윤리 교육 자료 사진에서 수백 번 본 그 흉터였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A양’ 실명은 지워져 있었지만, 도현은 그녀의 실명을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도현은 종착역을 넘기기 시작했다. 여자는 매번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스키니진, 간호사 가운, 체육복.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도현이 다가가면 그녀는 “저기…” 하고 말을 걸었다. 그녀의 눈빛은 눈동자 한가운데만 까맣게 남겨진 사진 같았다.

“저… 여기서 내리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녀가 말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도 한 발 더 내디뎠다.


뇌과학자는 그걸 ‘도파민 착시’라 부른다

금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일차 금기 — 사회가 금지한 것. 이차 금기 — 내가 스스로 ‘절대 안 돼’라고 부른 것.

유니콘은 두 금기의 교차점에 선다.

  • 사회적 파국은 예견돼 있다.
  • 개인적 파국은 이미 시작됐다.

그런데도 우리가 문을 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기 자신이 깨질까 봐’ 두려운 거다.

유니콘은 결국 당신이 아닌 당신의 조각을 원한다.

그 조각을 건네주면, 당신은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대신 사르르 녹는 순간을 선물 받는다.


“내가 누굴 잡아야 할까”

주혜는 문을 닫고 올라왔을 때, 복도 끝에 서 있던 남편을 봤다. 남편은 병원 봉투를 들고 있었다. 봉투 안에는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 의자에 앉아 있는 주혜의 뒷모습. 그녀의 목덜미에 남자의 입술이 닿아 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빨간 펜으로 또렷이 쓰여 있었다.

YOU KNEW.

도현은 종착역에서 기차에 남았다. 대신 그를 찾던 동료가 올라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가 내민 카드 한 장이 도현의 가슴팍에 닿았다.

윤리위원회 소환 통지서.


문을 닫을 수 있을까?

아니면 닫아야 할까?

아니, 내가 닫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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