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숨이 닿은 순간
그가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밀어 넣었다. 피임은 없었다. 고무 냄새는 끼지 않았고, 끈적이는 액체는 이미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지금 이 순간 이후에 무엇이 일어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조금 더 벌렸다. 그의 숨결이 닿는 내부의 점막이 떨렸다. 왜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위험에 내몰고 있는가.
욕망의 해부: 생명을 부르는 공포
"아, 안 돼... 나중에... 그래도..."
나중에라는 말이 나올 때 이미 늦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피임 없는 섹스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생명을 부르는 의식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가장 날카로운 쾌락의 형태다.
무엇이 더 두려운가. 임신인가, 아니면 임신하지 않는 평범한 삶인가.
우리는 깊은 곳에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그 공간을 비워두는 것이 오히려 공허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위험을 기꺼이 맞이한다. 결국 우리는 죽음보다 생명에 끌리는 존재다.
두 개의 실화
지하철 2호선 안에서
민서는 매일 아침 8시 17분, 2호선을 탄다. 그녀의 남편은 피임을 강요했다. "우리는 아직 준비 안 됐어." 그녀는 매번 고무 냄새를 맡으며 섹스를 했다. 그러나 지난주, 그녀는 다른 남자의 눈을 마주쳤다. 같은 차량, 같은 시간. 그 남자는 조용히 다가와 귓속말로 했다.
나는 네가 매일 이 시간에 이 칸에 있다는 걸 알아.
그날 저녁, 민서는 남편의 피임약을 몰래 바꿔치기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남자와의 눈빛 교환은, 그녀에게 생명을 부르는 암시를 주었다. 그녀는 생명을 원했다. 남편이 아닌, 그 남자의.
33층에서 내려다본 도시
도윤은 고층 오피스에서 일한다. 그녀의 연인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는 안전하게 해야 해." 그녀는 매번 그 말을 들으며 몸을 구부렸다. 그러나 어젯밤, 그녀는 연인의 콘돔을 모두 찢어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위로 올라가 말했다.
오늘은 그냥 안에다 해. 그래도 돼.
연인은 당황했지만 거부하지 못했다. 도윤은 33층 창밖을 내려다보며 느꼈다. 이 도시의 수많은 불빛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내부에 생명이 심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황홀한 기쁨이었다.
왜 우리는 이 위험에 끌리는가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생명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명을 부르는 위험에 끌린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통제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피임은 통제다. "이 이상은 안 돼"라는 인간의 끊임없는 통제 욕망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깊은 본능은 통제를 거부한다. 우리는 생명의 불확실성을, 그 불가지성을, 그리고 그로 인한 극단적인 책임을 원한다.
결국 우리는 사랑보다 생명에 끌리는가.
마지막 질문
당신은 언제까지 자신의 내부를 비워둘 것인가. 아니면 언제까지 남의 생명을 막으려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