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빨리.”
서린은 남편의 목덜미에 숨을 뿜으며 속삭였다. 아이가 방금 막 잠들어 15분 남았다, 어쩌면 10분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은 강렬하게 요구했다. 굳이 서사 없이, 키스도 생략하고, 손끝만으로 충분했다.
수연이 미소 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이야, 우리에겐 시간이 있어.
시간이 있어. 그 말이 서린의 등줄기를 날카롭게 긁었다. 시간 없어, 지금 아니면 죽을 것처럼 아쉬워. 그 갈망이 너무 커서 눈앞이 아른거렸다.
눈 떠보니 우리는 달라졌다
우리가 뭘 하고 있나? 서린은 침대 끝에 앉아 속눈쇼를 뜯었다. 38도가 넘는 아이의 열체크, 유치원 취소 통보, 밀린 빨래 더미, 무릎 박차로 엎어진 요거트죽. 하루 종일 자신을 분쇄한 잔해들이 어깨에 쌓여 있었다.
그 잔해들 사이로 튀어오른 욕망은 날카로웠다. 두꺼비집게처럼 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떼어버릴 단 한 번의 쾌감. 빠르게, 강렬하게, 말끔하게.
그러나 수연은 달랐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갇힌 그는 집에 와서야 비로소 시간이 된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꼼꼼히, 한땐 한땐 다시 애무한다는 듯이. 그 차이가 서린을 미치게 했다.
10분 뒤면 아이가 깨어나
"그는 내가 기다리는 동안 어떤 느낌인지 모를 거야."
서린은 메모 앱에 숨겨놓은 일지를 썼다. 날짜마다 실패한 섹스의 이유를 적었다. ‘21:47 아이 울음소리’ ‘22:13 민준이 토함’ ‘23:05 그가 졸림’.
어느 날, 서린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아이 방 앞을 서성였다. 민준이 잠들기만을 기다리며, 침대 끝에 앉아 두 손으로 발바닥을 비비고 있었다.
수연아, 지금이야.
아직 흔들림이 남았어. 천천히.
10분이면 되는 걸 왜 30분을 끌어?
그녀는 답답함에 어금니를 악물었다. 쾌감은 이미 정점에 가까웠는데, 수연은 새삼스러운 발견을 하듯 그녀의 복부를 쓰다듬었다. 지루함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다들 말은 쉽지
“부부 생활은 대화로 풀어야 해요.”
친구 혜지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번개처럼 섹스를 한다고 자랑했다. 5분 만에 끝내고 나면 아이들은 TV 애니메이션에 정신이 팔려 있다나. 서린은 부러웠지만, 수연은 그런 식이라면 차라리 안 하겠다고 했다.
"빠르게 끝내는 건 성폭행 아닌가?"
수연의 말에 서린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이 폭력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폭력이 아니라 해소였다. 하지만 수연에게는 그 차이가 모호해 보였다.
내가 사라진 밤
민준이 기침을 하며 또 깼다. 서린은 침대에서 튀어나와 아이를 달랬다. 기침이 그친 뒤에도 민준이는 눈을 반짝이며 속삭였다. 엄마, 나랑 같이 자.
그 순간, 서린은 느꼈다. 자신의 욕망이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아이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라는 걸. 끝없는 육아의 늪에서 한순간만 벗어나고 싶은 절박함. 눈앞이 흐려지던 순간, 수연이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물었다.
괜찮아?
아니.
그녀는 민준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섰다. 침대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문을 닫자 수연이 조용히 말했다. 미안, 네가 얼마나 바빴는지 몰랐어.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아기의 울음소리는 뇌의 전두엽을 강타한다. 케어를 멈출 수 없는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여성의 몸은 전쟁 상태로 돌입한다. 코르티솔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아드레날린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그런 상태에서 느린 애무는 고문이다. 빠른 오르가슴은 마치 ‘스냅’을 울리는 듯한 해방이다. 끝. 그 한 글자를 외치는 순간, 서린은 육아의 포로에서 인간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그 해탈의 속도를 모른다. 그는 하룻밤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처럼 서린의 몸을 읽으려 한다. 느리게, 정성껏, 사랑한다는 증거로. 그러나 그 사랑의 속도는 서린에게는 잔혹하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어느 새벽, 서린은 수연이 자는 동안 침묵 속에서 몸을 스스로 달랬다. 조용히, 빠르게, 숨소리조차 삼키며.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그녀의 욕망은 단지 남편에게만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수연의 천천함이 언젠가 다시 그리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스멀거렸다. 아이가 크면 시간이 생길 테고, 그때는 다시 느리게 사랑하고 싶어질지도.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빠르게 원할 땐, 당신은 누구를 위해 천천히 건드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