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임신 12주, 한 입의 맥날이 흔든 ‘아빠’의 밤

맥날 한 입에 잠 못 드는 남편. 그의 불안 뒤에 숨겨진 ‘아빠’라는 이름의 집착과 두려움을 파헤친다.

임신공포기혼남편부부불화태아보호집착새벽불안

"이거 한 입만 먹었다고 아기가 기형이라니요?"

새벽 1시 42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원룸. 유리창 너머로 화려한 간판 불빛이 초록 벽면을 번쩍이는 그곳에서, 다현은 뜨거운 튀김 냄새를 한 모금 들이마신 뒤 눈을 떴다. 옆에서 남편 민우가 벌둥벌둥 뒤척인다. 그는 한 시간째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아니, 그게 진짜 인스턴트유리아니가 들어있다던데...
살균제 계란 스캔들 때처럼 나중에 발각되면 어떡해?
우리 아기 심장이... 떨려...

다현은 그의 손등에 손가락을 살며시 얹었다.

차라리 나를 걱정해줬으면 좋겠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민우가 두려워하는 건 단순한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그는 ‘아빠’라는 낯선 자리가 주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열두 번째 주, 아직 손가락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태아에게 미래의 모든 책임을 쥐어 맡은 기분. 먹는 것 하나, 마시는 것 하나가 아기의 운명을 뒤바꿀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너무 무거워서, 다현의 몸이 아니라 자기 안의 불안을 처방하고 싶어 한다.

그녀가 먹은 게 죄라면, 내가 허락한 것도 범죄일 텐데.

민우는 시계만 보았다. 2시 14분. 아기는 지금 심장박동을 끌어올리고 있을까. 혹시 방금 들어간 프라이드감자 속 산패된 기름이 태반을 거쳐 아기의 뇌로 흘러가고 있을까. 그는 유튜브 검색창에 ‘맥도날드 임신 12주 기형’을 또 쳤다. 영상은 없었다. 대신 ‘엄마가 먹은 것 = 아기 먹은 것’이라는 댓글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아내의 몸은 내게서 빌려온 것"

강서구 화곡동. 지하철 5호선 발산역 1번 출구 뒤편 PC방 2층. 예진은 박 씨 성을 가진 남편과 함께 3년째 산다. 그녀가 임신 11주 반에 겨우 게임 한 판 끝내고 치킨을 시켰을 때, 남편은 키보드를 뚝 끊고 말했다.

콜레스테롤이 아기 귀에 간다더라
니가 먹는 건 다 내 아들이 먹는 거야

예진은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 내가 먹는 건 내 아기인데, 왜 당신이 ‘내 아들’이라 지칭하지?

이튿날, 예진은 사내 휴게실에서 동료에게 털어놨다.

그 사람, 자기가 아기라도 된 것처럼 컵밥도 못 먹게 하더라고.
나 괜찮다고, 태아 검사 다 이상 없다고 해도 계속 ‘혹시 모르니까’ 그래.
아... 정말 숨이 막혀.

동료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남편도 그래요. 제가 먹는 순간,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처럼 발작하더라고.” 두 사람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맞췄다.

둘 다 ‘우리 아기’라는 말이 아니라 ‘내 아기’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는 사실.


왜 밤마다 산모 간식가게를 검색할까

그들이 잠 못 드는 이유는 단순히 먹거리 탓이 아니다. 아기는 아직 혈액장벽도 제대로 생기지 않았지만, ‘아빠’라는 이름표를 단 두려움은 이미 기관처럼 발달해 있었다. 아내의 몸이 내 아이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공포를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민우는 냉장고를 열 때마다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예진의 남편은 태아보험 약관 27페이지를 줄줄 외운다. 이미 아기의 몸이 아니라, 아기를 둘러싼 자기 통제욕에 홀린 것이다.

"제발 그만 먹어달라"는 말 속에는 "제발 나를 믿어달라"는 목소리가 숨겨져 있다.


나는 네가 아빠가 되는 것이 두렵다

다현은 새벽 3시 4분에 일어나 민우에게 말했다.

나는 아기를 낳는 게 아니라, 너를 낳는 기분이야.
네가 아빠가 되는 그 순간을.
그래서 더 무서워.

민우는 입을 다물었다. 침대 끝에 앉아 다현의 배를 바라봤다. 아직 손바닥만 한 둥근 부분. 거기에는 아기도 있고, 다현도 있고, 민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우리’라는 단어가 흔들리고 있었다.


당신의 잠 못 드는 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