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미디 클럽의 조명 아래에서
"나는 폴리인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어요. 근데 그 여자가 날 더 좋아한대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냐면, ‘그럼 너도 나랑 자면 되지’"
관객들이 폭소했다. 나도 웃어야 했다. 근데 웃음이 목끝까지 올라오다가 삼켜졌다. 왜냐고? 그 농담이 내 얘기였으니까. 진짜 있던 얘기였으니까.
나도 그랬다. 진짜 그랬다.
웃음 너머에 숨은 욕망
폴리를 하면서도 난 흔들렸다. 가장 큰 공포는 ‘내가 누군가의 ‘옵션’이 되는 거였다. 누군가의 1순위가 아닌, 그냥 가능한 리스트 중 하나.
테일러의 농담이 웃긴 건 맞았다. 근데 그 웃음 뒤에는 살아있는 공포가 있었다. 상대가 날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 희망이 더 야비했다. 내가 ‘선택’받고 싶은 욕망이, 다분히 독점적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울었다.
폴리를 한다고 해서 소유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주희와 재혁, 그리고 나
주희는 내가 소개한 여자였다. 폴리를 시작하면서 재혁이 만난 첫 ‘새로운 연결’. 그녀는 뮤지컬 배우였고, 웃을 때 눈이 반달처럼 되는 게 예뻤다.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어제 주희랑 있었어?"
"응, 한강 산책하다가 와인 바 갔어."
"와인, 좋았겠네."
"그래. 너도 같이 갈걸."
나는 웃으며 받았지만 손에 쥔 와인잔이 덜컹거렸다. 그날 밤 재혁이 잠든 뒤, 나는 주희의 인스타그램을 3년 전 사진까지 쭉 들여다봤다. 그녀가 올린 한강 사진에서 재혁의 신발이 살짝 잡혀 있었다. 분명 재혁이 찍어준 사진.
다음 날 우연히 마주친 주희는 나를 반겼다.
"재혁이랑 어제 진짜 재밌었어요. 오빠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말에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근데 가슴 한쪽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더 나를 불안하게 했다. 왜냐고?
내가 원하는 건 그녀의 호객이 아니라 재혁의 배려였다는 걸 그때 깨달았으니까.
두 번째 이야기, 혜지와 승엽
혜지는 내가 먼저 제안한 관계였다. 폴리 커플 모임에서 만난 그녀는 나를 먼저 눈 맞춤으로 불렀다. 승엽은 흔쾌히 OK했다. 우리는 한 달 정도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 혜지가 서운하다고 했다.
"오빠는 내가 승엽이랑 만나는 거 진짜 괜찮아요?"
"그럼,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
"근데 오빠 표정이... 뭔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대답을 멈췄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혜지가 승엽과 있던 날 밤, 나는 집에서 혼자 맥주를 4캔이나 마셨다. 그리고 승엽의 차를 혹시나 해서 2시간이나 길가에서 기다렸다. 둘이 나오길래, 서둘러 뒤로 숨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 울었다. 폴리를 한다고 선언했던 내가, 결국 폴리를 견디지 못하는 모습.
금기를 향한 끌림
왜 우리는 폴리를 하면서도 질투를 느끼는가? 왜 상대가 다른 사람과 즐거워하는 모습이 가슴을 쥐어짜나?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고. 폴리는 불확실성의 극대화다. 오늘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일도 내 곁에 있을지, 혹시 더 나은 누군가에게 끌릴지 모른다는 불안.
그런데 이 불안이야말로 우리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한다. 질투의 화끈거림, 소외의 서늘함, 그 모든 감정이 우리를 현재에 붙잡는다. 폴리를 한다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실은 이 감정의 강도에 중독되어 있다.
테일러 톰린슨의 농담이 웃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 불안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려 하지만, 실은 그 불안이 우리를 더 깊이 끌어당긴다는 걸 알고 있다.
당신은 누구의 우선순위였나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폴리'를 논의하고 있다면 물어보자.
정말로 당신은 상대가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그 모든 순간을 축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당신이 1순위로 남아 있기만을 바라는 건 아닐까?
그리고 당신의 울음은 언제쯤 웃음이 될까, 아니면 그대로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