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의 혈통을 가지고 놀던 밤, 후회는 없었다

고귀한 가문의 딸, 그녀를 찢어낸 순간의 전율. 당신도 한 번은 꿈꿨던 금기의 맛.

욕망혈통금기집착초기관계

“너는 정말 몰라?”

그녀가 말했다. 왼손에 든 긴 담배를 오른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금단의 문장이었다. 한 번, 단 한 번만 입안에 담으면 끝장인 그런 말.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대신 그녀의 콧망울 위로 흘러내리는 장미빛 피를 바라봤다. 오늘 밤 그녀는 뭔가를 깨뜨렸다. 아니, 내가 깨뜨렸다.


순백 위에 뿌려지는 붉은 점들

우리는 그녀 집 안식실에 있었다. 200년 된 와인 저장고처럼 추웠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엔 아직도 대를 이은 정원사가 밤새 조각대야를 갈고 있었다. 그녀의 증조할아버지가 심은 장미꽃 한 송이도 뽑아버릴 수 없는, 그런 집안이었다.

  • 나는 네가 아니야, 아무도 못 건드려. 그래서 더 좋아.
  • …….

그녀는 말했지만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혀끝을 잡았다. 가늘고 하얀, 귀족의 혀. 거기까지도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지켜온 맛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걸 깨물었다. 아주 살짝. 피 한 방울이, 그녀가 자랑하던 코르크 마개 위로 떨어졌다. 딸각.


혈통의 냄새

왜 하필 그녀였을까? 나는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여자들을 떠올렸다. 축 처진 가방 끈, 새까만 하이힐 구두 뒤꿈치 긁긁거리는 소리. 그들도 충분히 예뻤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아침 8시15분, 남산을 내려다보는 강남 빌딩 45층에서 깨어나는 여자. 유전자가, 가문이, 할머니의 할머니가,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아이까지 손에 쥐고 사는 여자.

그리고 나는 그걸 둘째치고 그녀의 목덜미에 눈이 갔다.

누구든 한 번쯤은 꿈꾼다. 고귀한 것을 더럽히는 환희.


실제 같은 이야기 1 — 지안과 나의 26일

지안은 스물여섯이었다. 아버지는 제약 대기 회장이었고, 어머니는 전직 야구 국가대표였다. 우리는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루프탑 바에서 혼자 블러디 메리를 마시고 있었다. 진짜 피처럼 붉은 칵테일. 나는 단순히 인사했다.

  • 담배 피워요?
  • 아니, 입술에만 대고 있어요. 냄새는 좋아하거든.

그날 이후 26일 동안 우리는 서로를 갉아먹었다. 그녀 집 도서관 난로 위에서, 그녀 아버지가 2년 전 낙찰받은 18세기 탁자 위에서, 심지어 집사가 죽은 기와집 지하 창고에서도. 지안은 말했다. 너는 나를 부서진 찻잔처럼 여기는구나. 나는 대답했다. 아니, 나는 너를 해방시켜주고 싶어.

그녀는 웃으며 이마에 난 주사 위를 긁었다. 아주 살짝. 피가 났다. 나는 그걸 핥았다. 짠맛에, 왜인지 눈물이 났다.


실제 같은 이야기 2 — 하연과 나의 단 하루

하연은 변호사였다. 서른 둘. 그녀는 판결문을 읽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 나는 너를 고소할 수 있어. 성폭행으로.
  • …그럼 왜 안 해?
  • 싫어서. 너는 나를 고발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우리는 그녀 회사 옥상에서 만났다. 38층. 그녀는 아직도 정장 재킷을 입은 채였다. 나는 그녀의 검은 양말을 한 장 한장 벗겼다. 발목에 작은 반점이 있었다. 유전자 검사용 채혈 자국. 그녀는 말했다. 내 증조할머니는 왕족이었어. 나는 대답했다. 나는 왕족의 딸을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 눕혔어.

그날 밤 하연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뭘 얻고 싶은 거야?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저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없애고 싶었던 거야.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파르마콘(parikh-man) 현상이라고. 빼앗기지 않을 것 같은 대상을 빼앗는 쾌감. 그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그들이 갖고 있던 불가능한 무언가를 손에 넣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완벽한 인맥
  • 평생 모을 수 없을 재산
  • 굳건한 가족의 이름

우리는 그걸 만지고, 때리고, 더럽히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우리도 그 불가능에 눈을 맞출 수 있으니까.


너는 무엇을 더럽히고 싶은가

나는 아직도 지안의 피 한 방울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말려서, 초콜릿처럼 단단해진 그것. 어떤 날은 꺼내서 입에 넣는다. 짠맛이 나고, 왜인지 눈물이 난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아니, 후회 따위는 없었다. 다만 네가,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찢고 싶은 충동이 일면 기억해줬으면 한다.

너는 누구의 혈통을 가지고 놀고 싶은가. 그리고 그걸 가진 사람,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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