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그래? 내가 뭐가 그렇게 부족해서 혼자 술 마시고 있어야 해?"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지안은 눈가를 붉히며 휴대폰을 내려놨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민수는 이미 한 시간째 고개를 숙인 채 반복해서 사과하고 있었다. 사실 민수는 그저 친구들과 단순한 회식 자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안은 알고 있었다. 그 눈물 하나면 충분하단 걸.
눈물은 진짜였지만, 상처는 각본이었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똑같았다. 지안은 자신이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라는 걸 은근슬쩍 보여줬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전 남자친구의 배신. 이야기는 항상 비슷했고, 그녀의 눈동자는 언제나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냥 사랑받고 싶을 뿐인데, 왜 항상 다들 나를 아프게 할까?'
그 말을 들은 순간, 남자들은 스스로를 지키려 했던 방어막을 내려놓았다. 그녀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 다짐은 곧 지켜야 할 약속이 되었다.
피해자의 가면 뒤에 숨긴 욕망
지안은 지난 3년간 네 명의 남자와 만났다. 모두가 그녀를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첫 번째 민재는 "나 때문에 아픈 사람을 버리면 나도 나쁜 놈이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두 번째 현우는 "네가 이렇게 다치는 걸 보면서 나도 미치겠어"라고 했다.
그들은 몰랐다. 지안이 휴대폰 갤러리에 정리해둔 스크린샷들을. 민재가 단순히 누나와 저녁을 먹었다고 했을 때,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나도 네가 누나만 좋으면 그만이야
어차피 나는 항상 뒷전이었잖아
너랑 있으면 내가 진짜 외로운 것 같아
세 문장. 그게 전부였다. 민재는 그날 밤 새벽 두 시까지 지안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증거' 폴더에 보관했다.
교묘한 고문의 기술
세 번째 남자, 준호와의 일이었다. 준호는 지안에게 연락이 뜸해지던 중이었다. 평범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지안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준호야, 나 오늘 병원 갔다 왔어."
카톡 한 줄. 준호는 즉시 전화를 걸어왔다. 지안은 목소리를 가장 약하게 만들어 말했다.
"괜찮아, 그냥 계속 가슴이 답답해서. 의사 선생님이 스트레스성 호흡곤란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날 이후 준호는 하루도 빠짐없이 지안을 찾았다. 사실 지안은 그날 건강검진 차원에서 병원에 간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가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준호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
진짜 아픈 건 준호였다. 지안의 눈물이 만들어낸 죄책감에.
우리가 이것에 끌리는 이유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피해자 코딩'이라고 부른다. 상처받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무의식적 신호들. 하지만 더 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는 피해자를 구원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 욕망은 성적일 수도 있다. 상처받은 연인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라고 속삭일 때의 도취감. 그리고 동시에 두려움. 만약 그 사람을 버리면 나도 가해자가 되는 것일까.
지안은 이 본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상처를 과장했다. 사소한 말다툼도 끝내 이별로 몰고 갔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그녀는 절대적인 힘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거울 앞의 너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지인에게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깐만. 당신의 연인이 눈물을 흘리며 "나 때문에 그런 거지?"라고 말할 때, 당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지 않았나.
그리고 그 눈물이 사실은 연기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당신은 분노했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 연마를 부러워했는가.
너도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적은 없니? 상처받은 척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정직하게만 살아왔던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