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시켰어. 페퍼로니.”
그 한 마디가 전부였다. 익숙한 번호에서 뜬 문자, 하지만 38일 만의 연락.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초인종을 눌렀고, 문 앞에 놓인 뜨거운 상자만이 우리 사이의 남은 온도였다.
피자를 받아 든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저녁이 아니라 장송식이다. 상자 뚜껑을 열자, 붉은 페퍼로니가 네 개. 둘이 먹던 날엔 항상 여덟 개를 주문했는데.
사랑의 잔여물이 굳어지는 순간
뜨거운 치즈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이건 울음소리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긴 체온이야.
왜 하필 지금이야. 왜 하필 피자야.
그날 밤, 우리는 피자 한 판을 놓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안에 넣은 건 고기도 빵도 아닌, 3년의 관계가 굳어져버린 잔여물.
실제 같은 이야기: 지하철 2호선 끝자락
사례 1: 혜진과 준호
혜진은 매주 금요일 밤, 준호가 시켜주던 ‘마르게리따 더블치즈’를 먹으며 연애 전선을 지켰다. 둘 다 일이 바빠져 금요일이 유일한 만남의 날이었고, 마르게리따는 그날의 제사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준호가 들어오며 말했다.
오늘은 페퍼로니로 바꿨어.
너무 질려서, 미안.
혜진은 한 입 먹고 울었다. 치즈가 목끝까지 차올랐는데도 삼킬 수 없었던 건, 자기 자리가 페퍼로니 하나만큼 줄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로 둘은 피자를 먹지 않았다. ‘마르게리따’가 죽은 관계의 무덤이 되어버린 탓이다.
사례 2: 동호와 시은
시은은 임신 7주 차였다. 동호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불고기 피자 세트’를 시켰다. 배달이 오기 직전, 시은은 산부인과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지금 고기 냄새만 맡아도 토해.
너는 내가 왜 불고기를 시켰는지 아니?
동호는 단 한 입도 먹지 못했다. 뜨거운 상자는 그 자리에서 식어갔고,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만 보다가 새벽 3시가 되어 차가운 피자를 쓰레기 봉투에 처박았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피자는 공동체의 음식이다. 손을 뻗어 한 조각씩 뜯어먹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속도위반 같은 친밀감을 선물한다. 그래서 피자 한 판으로 끝나는 사랑은 이중의 사형이다.
- 너와 나를 먹이던 음식이 우리를 대신해 시신이 된다.
- 마지막까지도 ‘반만 먹을까?’라는 배려가 습관처럼 튀어나와, 우리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관계가 죽을 때 가장 잔혹한 건, 아무 일도 없는 듯한 마지막 식사야.
너는 이미 피자 다음 주문에서 나를 지웠을까
우리는 그날 밤 피자를 다 먹지 못했다. 너는 아직 냉장고 한쪽에 남은 두 조각을 처리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돌아볼 시간. 네가 다음에 누군가와 피자를 시킬 때, 토핑을 고르는 3초 동안 누가 떠오르는가.
그 3초가, 아직도 우리를 살아 있다고 말해주는 유일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