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XX 손가락만 봐도 아는데?”
수진은 잠든 새벽 세 시, 친구로부터 온 메시지를 보고 손에 든 맥주캔을 떨어뜨렸다. 스크린샷 속엔 남자 단체방 대화가 가득했다.
[18명 대화방] ㅇㅇ: 요즘 우리 직장 올리는 애
ㅇㅇ: (사진) 여기서 다리만 좀…
ㄱㄱ: 헐 ㅋㅋㅋ 얼굴 살짝 가리고 올린 거임?
ㄴㄴ: 얘가 왜 저런 걸 올려 ㅋㅋ 인스타에서 스토리로 삭제했네 오늘도
ㅇㅇ: 잠깐 뜬 거라고 빨리 캡쳐했음 ㅋㅋㅋ
ㄷㄷ: 와 자연스럽게 앉아있는데 각도가… 진심
ㄱㄱ: 아 진심 찐득하네 ㅋㅋㅋㅋ
사진 속엔 수진이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무릎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다리를 살짝 벌린 채 웃고 있는 모습. 수진은 그날 스커트가 짧아서 가방으로 가렸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 틈을 비집고 찍었다.
보이지 않는 손
그들은 내 몸의 각도를 재고 있었다.
어깨 너비, 허리 각도, 다리 사이 틈새. 한 명은 ‘사이즈 어림’이라 적었고, 다른 이는 ‘이런 얼굴이 저런 포즈라니’며 혀를 찼다. 수진은 그들이 자신을 몇 번이나 돌려서 봤는지 세었다. 42번. 확대·축소하며 스크린샷한 횟수는 더 많았을 것이다.
아침이 되자 그 대화방은 사라졌다. 하지만 수진의 핸드폰 앨범엔 그 증거가 남았다. 친구가 전한 스크린샷 7장. 각각의 사진마다 붉은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여기 주목
이 부분 ㄹㅇ
와 대박
욕망의 퍼즐
그들은 정말 나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나를 부수는 재미에 홀린 걸까.
수진은 며칠째 같은 생각의 늪에 빠졌다. 그들의 대화는 결코 ‘좋아서’가 아니었다. ‘예쁘다’는 말도 없었다. 오직 파괴와 분해, 재조합의 언어들뿐.
내 다리를 두 조각으로 쪼개고, 허리를 숫자로 환산하고, 가슴을 퍼센트로 논했다.
이 언어는 사랑의 언어가 아니었다. 놀이의 언어였다. 그들은 수진의 사진을 가지고 자신들끼리의 게임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게임판 위에서 수진은 한낱 ‘조각난 욕망’의 재료였다.
누나의 블라우스
지훈, 31세, 회계사. 그는 동호회 단체방에서 수진의 사진을 처음 봤다.
지훈: 요즘 같이 일하는 애 아님?
ㅁㅁ: 어 ㅇㅇ 3층 마케팅팀
지훈: 되게 시원시원하네 ㅋㅋㅋ
ㅁㅁ: 형도 봤구나? 나도 어제 캡쳐했어
지훈: 캡쳐 각인가 ㅋㅋㅋ
그날 밤 지훈은 수진이 회식 자리에서 웃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술을 권하는 상사를 막으며 “저는 소주 마시면 얼굴 붉어져요”라고 속삭였다. 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저 붉어지는 얼굴, 내가 만든 거면 어땠을까.’
하지만 대화방에선 그런 감정 따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그는 “되게 시원시원하네”라고 적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 단어는 이미 그들 사이에 공유된 욕망의 코드였다. ‘시원시원하다’는 건, ‘벗겨볼 만하다’는 뜻이었다.
사진 너머의 사진
한 달 뒤, 수진은 우연히 지훈과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케팅팀이시죠?” 지훈이 먼저 말을 걸었다.
수진은 그의 눈빛이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그 대화방에서 내 사진을 42번 돌려봤던 눈빛이다.
“네… 맞아요. 회계팀이시죠?”
“네, 3층 자주 오시더라고요.”
지훈은 미소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다. 수진은 그걸 봤다. 그는 나를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는지, 어떤 포즈로 앉아 있을 때 가장 ‘시원시원’해 보이는지.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릴 때, 지훈이 한 마디 했다.
“오늘 회식 있대요. 같이 가실래요?”
수진은 그의 목소리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나를 초대하는 게 아니라, 내 사진을 초대하는 것이다.
어둠을 마시는 법
왜 우리는 타인의 사진을 훔쳐보는 데 끌릴까. 순진한 설명은 있다. ‘호기심’ ‘욕망’ 같은 단어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그 사진 한 장이 내가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지훈이 수진의 사진을 42번 돌려봤을 때, 그는 단순히 수진을 탐냈던 게 아니다. 그는 수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웃으며 사진이 찍히지 않을 거야’라는, 냉엄한 현실의 재확인.
우리는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의 사진을 훔쳐본다. 내가 될 수 없는 나의 가능성들. 내가 선택할 수 없던 나의 모습들. 그리고 그것들을 조각조각 뜯어, 욕망의 언어로 재조합한다.
‘이 다리는 더 길었으면’, ‘이 허리는 더 날씬했으면’, ‘이 가슴은 더 컸으면’.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사진을 통해 자신을 파괴한다. 그리고 그 파괴의 순간, 오히려 우리는 안도한다.
‘아, 나는 아직 나다’라고.
너는 누구의 사진 속에 있는가
오늘 밤, 당신의 사진은 어디에 떠돌고 있을까. 당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단체방에서 ‘저 XX 진짜 XX하다’는 말 속에 분해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맞는가.
아니면, 당신은 이미 오래전에 그 사진 속에서 죽었는가.